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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올린 게 7월 31일, 지금은 9월 5일입니다.

설국열차는 제가 원래의 글 말미에 예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흥행했습니다. 대다수 관객에게는 양갱이 또렷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잘된 일입니다. 저도 양갱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한동안 양갱을 먹을 때마다 꼬리칸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하여 이 글은 정말 볼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아예 일언반구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정 보시려면 클릭해서 보세요. 은폐하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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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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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5 13: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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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완전 재밌네요. 저는 사실 설국열차를 재밌게 봤는데 글을 읽어보니 또 그 얘기도 맞는 것 같고 그러네요. 좋은 글 잼나게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감상을 오로지 자본주의에 관해서만 가지도록 방향을 고정시켜 버린다 // 고 하셨는데 왜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오히려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셨듯 기초교육자료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영화인데, 그런 의미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봉준호의 작품은 보통 대중성과 예술성을 같이 지녀 내용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대중적 흥행에도 성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도 그 줄기를 지니고 있다고 보구요. 그런 줄기 속에서 이런 큰 얘기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유가 명확한 구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에요. 게다가 이런 딱 떨어지는 촌스러운 구성을 여러 화려한 액션이나 기차 설계, 상상력으로 어느정도 만회했다고 생각하구요. 물론 엽토군님의 말에 따르면 너무나도 기초적이고 허무한 얘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또 저한테 있어서는 이러한 시도가 좋다고 느껴지는 게 (물론 이런 영화를 아무리 봐도 이미 영화를 하나의 재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리 만무하지만) 오히려 예술성있고 난해하게만 만들어놓으면 일단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차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게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꼬리칸으로 밀려나게 되는 진실일 수도 있겠죠. (무력은 나쁘지만 커티스처럼 반란을 일으켜 나가려면 잦은 꾀와 무력과 희생이 어느정도 필요했던 것처럼요)

    이런 영화가 의미있는 것은 이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 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 그렇게되면 정작 생각해야 할 당사자들은 아마 그 영화를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재미가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적어도 자신이 꼬리칸에 탑승해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가시화시켜 보여주기 좋은 구성을 오히려 감독이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2013.09.05 13: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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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어쨌든 단순 오락영화니까요. 오락영화가 프로파간다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한 저의 착오가 그대로 진술돼 있는 글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어법은 아니구요
      그리고 저는 똑똑하지 않아요.
  2. 2013.09.05 13: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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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랄까,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을 굉장히 자본주의적으로 홍보하는 게 오히려 더 아이러니해서 흥미롭게 다가왔는데요. 열차를 파괴하자는 내용을 정당한 티켓값을 내고 열차 위에 올라타 사람들에게 떠드는 모습이랄까요. 현대 사회에서 뭔가를 제대로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관심을 얻으려면 이미 다수의 논리가 돼버린 사회의 분위기를 적당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설국열차가 굉장히 그걸 잘 이용했다고 생각하구요.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마는 자본주의의 문제 중 하나는 사회의 피해자들조차 다수의 사고에 마취돼 비판의식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봉준호'와 '영화적 재미'라는 간판을 달고 cj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적어도 900만이라는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cj가 배급사라는 게 저한테는 또하나의 은유라고 생각이 드는게 이 영화 자체가 본인이 말하신 면에서 또 하나의 자본주의적 상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조차 하나로 포장해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라는 면에서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고 (물론 영화 자체의 내용적 한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크게 인정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든게 오히려 그 아이러니적인 효과를 증폭시키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톰포드가 없었으면 한다고 했는데 그랬다면 정말 말씀하신대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무엇인가와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실체가 없는 것 또한 실체지요. 물론 비겁한 방법이긴 하지만 만약 톰포드의 실체가 없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어렵게 다가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열차 속에서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결말(물론 엽토군님은 똑똑하시니까 당근 이해하시고 넘어가겠지만)의 해석만에 집중하게 되겠지요. 그 비유를 명확히 하려면 실제로 존재하는 톰포드를 만들어 낸 쪽이 더 좋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넘어뜨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적어도 저한테는 카타르시스를 줬습니다. 내용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들도 그랬겠죠. 적어도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서 이 영화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는 점과 이 사회가 우리의 사회랑 꽤나 닮았으며 그렇다면 내가 어디 쯤에 속해있다는 점은 생각하고 나가게 되겠죠. (물론 아닐수도 있습니다 한 70프로의 확률 정도로)

    그런데 만약 톰포드가 없었더라면 사실상 마지막 반전은 "톰포드의 부재"가 되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오히려 관객들은 또 하나의 어려운 결말,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지나쳐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톰포드가 아니라 그 이후에 남을 고아성과 흑인 소년 타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타미 기계실 이후에 톰포드 부재라는 또 하나의 반전이 있었더라면 이 결말이 묻히게 됐겠죠. '희망'이라는 메시지가요. '나'의 설정과 '적'의 설정, 그리고 공격과 희망제시/ 라는 전형적인 틀로 하여금 감독은 관객들의 사고를 적어도 희망이라는 끝까지 연관시켜 끌고 나가는 데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99%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99%에 맞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암튼 좋은 글 잼게 읽었습니다.
    • 2013.09.05 14: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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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죠. CJ배급 자체도 훌륭한 맥락이 됐지요.
      적절하고 좋은 의견글인데 이런건 트랙백으로 누비미님 블로그에 따로 쓰셔도 좋을거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댓글로 남아있기엔 분량도 많고 급이 좀 높네요

      + 사족. 원작에서는 아예 머리칸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더군요. 전부 꼬리칸이었던거지요.
    • 2013.09.05 14: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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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우스운 거 말씀드릴까요? 트랙백이란 게 있는 건 아는데 뭔지 몰라요. 검색해보고 시도해보도록 할게요 조언 감사합니다 ㅋㅋ
    • 2013.09.05 14: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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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 사족이 가장 흥미롭네요
    • 2013.09.05 15: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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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트랙백 0" 눌러서 관련글쓰기 단추를 눌러보세요.
  3. 2013.09.05 13: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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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이 영화가 그런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배급사와 어쩌구 간의 큰 관계를 영화와 관련시켜 얘기한 겁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흥행의 압박 때문에 본인의 의견을 바꾸었을 확률도 높지만, 어떻게 보면 그걸로 더 큰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도 아마 상상하지 않았을지?)

    • 2013.09.05 13: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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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않아도 그럴 거 같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솔직히 좀 냉정을 되찾은 지금에 와서는, "모두가 꼭 봐야할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같은 건 이제 끝났다" 외에는 모든 입장을 다 철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설국열차>뿐 아니라 무엇에든지 호들갑 떨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깟 영화 한 편이 뭐라고.
    • 2013.09.05 14: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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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을 많이 좋아하셨다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언젠간 엽토군님 기대에 부응할 영화들도 나오지 않을까요? 뭐 언젠가 될지는 저도 모르지만...

존경하는 모 대학교 학식 담당자님, 나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2200원짜리 학식을 사먹지 못하고 늘 1800원짜리로 손을 뻗치고 맙니다.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좀더 세련된 중일품을 먹지 못하고, 단 4백원이 없어서 늘 설익은 밥과 늘 같은 맛의 국물을 마십니다. 누굴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존경하는 담당자님을 욕할 맘은 더더욱 없지요. 저의 경제적 선택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지불 능력이 없는 소비자입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다 보니 많은 핑계를 댈 수 있더군요. 돈이 없으면 술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미팅은 고사하고 노래방도 못 가지요. 학식 먹기 바빠 담장 너머 밥집은 꿈도 못 꾸고, 남들처럼 하루에 러키스타벅스나 그랬찌에 한 컵씩 타먹다가 맛없다고 놓고 나가는 사치는 더더욱 못 합니다. 돈이 없으니 하루에 집에서 가져오는 몽쉘 하나로 일일 코코아 섭취 권장량을 채우고, 돈이 없으니 어디 함부로 나다니지 못합니다(교통비 때문에). 아, 가끔 사치를 부립니다. 학생회 건물 꼭대기층 자판기에 150원짜리 '끓인 우유'가 있더군요. 그건 생활의 발견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돈이 없어서 많은 것을 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카운터에 있는 잔돈처리 저금통에 적선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자일리톨 하나를 살 수 없습니다(정말 필요할 만큼 입안이 텁텁하더라도).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내고 저축하고 누군가를 위해 돈을 꿔 주고 엄한 것 한 달에 한두 번 사고 나면, 용돈은 어디론가 빼기 기호 하나 남기고 떠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넉넉치 못합니다. 최근엔, 너무나 부끄럽게도, 아아, 식권을 컬러복사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매월 4만 5천원짜리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난 밥값도 못 하는 식충이올습니다. 그나마 그 터무니없이 값싼 밥을 두 번 세 번 더 타먹는 밥벌레올습니다. 문득 나는 꼭 공무원 같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나는 꼭 일찍 은퇴한 중늙은이 혹은 벤처기업 같습니다.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나는 꼭 서투른 사내 같습니다. 돈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가슴 한구석 짠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꼭 철없는 중학생 같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지지리궁상으로 같잖은 공부나 하는 거라고 떼를 쓰는.
알고는 있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까짓 점심, 편의점 7백원짜리 김밥 한 조각 가슴에 점찍고 말면 그만 아닙니까? 더군다나 사회개혁이니 환경보호니 행복이니 자아실현 따위에 더욱더욱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배고픈 학생인지라 잘 압니다. 돈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물리학이 말하듯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에 꽃치장해 보았자 돌덩이는 움직이지 않아요, 일정 방향으로 겨자씨만한 힘이나마 가해야 가속도가 생깁니다. 돈이 없어서 안 바뀐다고 하는 일은 돈이 있어도 안 바뀝니다. 대규모 물량공세가 판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어떤 용기있는 사람의 한 걸음, 분별 있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다음 말과 다음 행동을 점화하는 것뿐입니다. 다만 아무도 용기를 내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 사회적 잠재의식이 납득하지 않기 때문에.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전국민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법이 있다면 좋겠다. 그 시절 제게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토록 터무니없는 생각의 일종을 위해 정책과 시민단체와 사회복지가 있는 거더군요. 왜 그런 법이 없을까요? 왜 없어야 하지요? IT강국, 국민소득 2만불을 외치는 나라에서 왜 첨단산업 육성의 기반이 될 컴퓨터 보급 사업을 하지 않죠? 컴퓨터 개발사가 망할까봐? 오히려 잠재소비층의 폭발적 증가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조그만 압력이 될까요?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시민단체가 발벗고 나서고, 국민여론이 박수쳐 주고, 약간 속이 거뭇거뭇한 기업들이 투자해 준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마이쿠로소프트가 컴퓨터 보급 사업을 한다지 않습니까. 물론 흑심을 품은 시장 지배자의 계략이지만.
세상에는 돈이, 정말이지, 내게 그렇게 없는 돈이 세상에는 차고 넘쳐 떡을 치도록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사 하나가 가입자로부터 만 원씩만 받아도 한 달에 700억은 모이겠더군요. 도대체 그 많은 돈이 뭘 위해 들어가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으십니까? 그 돈들은 더 이상 한 푼 한 푼의 돈이 될 수 없고 사람들이 '자본'이라고 이름붙인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됩니다. 이 덩어리는 뭐든지 막을 수 있고 뭐든지 뚫을 수도 있습니다. 덩어리니까요. 넓고 두껍게 펴면 아무것도 뚫을 수 없고, 한곳으로 뾰족하게 모이도록 집중시키면 아무것도 버티지 못하는 겁니다. 되고 싶은 모양으로 얼마든지 변하고, 뗐다 붙였다, 쪼갰다 모았다, 얼마든지 가능한 어떤 덩어리. 돈 아닌 돈. 그게 담당자님이 뉴스를 볼 때 접하는 크나큰 숫자들의 정체입니다.
우리 사회더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죠. 뭘 할려면 자본이 필요한 사회란 뜻입니다. 물론 책에 나오는 자본은 극히 원론적이고 소박한 자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로 뭘 하고자 할 때 필요한 건 돈일까요? 아니죠. 그 덩어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돈이 없다고 할 땐 실은 자본의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절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여분 등등의 내역을 모른다거나 그걸 다소간 지출할 수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내겐 요술방망이가 없어서 그런 걸 시작했다간 용두사미가 될지 진퇴유곡이 될지 떡실신이 될지 모르겠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의사도 없으므로 난 모르겠다고 도망하는 것입니다.
전 돈이 없습니다. 자본은 당연히 없지요. 글쎄요, 이 학교에도 그런 덩어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덩어리를 조금씩 키우기 위해 제 푼돈이 매일 들어가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값을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우수리 계산하기도 곤란한 일이고 하니 차라리 1500원, 2000원으로 보기 좋게 자르면 아주 좋겠습니다. 담당자님은 학식 관련 재무상태를 잘 아실 겁니다. 그 숫자들을 재정이 아닌 돈푼으로 보아 주시고, 아주 조그만 움직임을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슬쩍 가격인하 변화를 시도해 보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어릴 적 나라에서 컴퓨터를 주는 꿈을 꾸었듯이 지금 저는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학생증 바코드 찍고 도서관 열람실 무료로 쓰듯이 학식도 주면 좋겠다, 라고 말입니다. 공산주의 사회 이론 혹은 유치한 망상을 듣는 것 같으신가요? 제가 내는 등록금은 한 달 5만원 이하의 밥값도 포함하지 못할 만큼 빡빡하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많은 돈이 아니라 겨자씨만한 변화입니다. 핑계가 아니라 시도입니다. 어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이론적 뒷받침이나 다수의 찬동 등등은, 그 변화를 싹틔우는 단 한 명의 무명씨가 없음을 핑계하며 오늘도 묵묵히 자본주의에 순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이걸 인쇄해 보여드리지 못하고 블로그에 적습니다. 근무하시는 가운데 평안과 행복이 날로날로 넘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가난한 학생 엽토군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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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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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4 15:1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http://7t7l.tistory.com/180 이것이 생각난다.
  2. 2008.05.25 02:3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미리견에서 미소연체회사가 셈틀 보급을 하는 것은, 이익의 사회환원을 하면서 사과회사의 점유율을 끌어내리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지. 조선땅에서는 이미 미소연체회사의 점유율이 높고, 조선사과셈틀회사는 보따리상에 불과하니 불가능한 일이지.

    나라에서 다달이 주는 용돈은 복지국가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시작된것일세. 복지국가 주장한 분들이 보시면 경을 치시리.
    • 2008.05.25 10: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지나치게 우리말로만 쓰니 이것도 잠시 잘 읽어지지 않아 좀 불편하군요.
      생활보조금 예시는 내가 생각해도 상투적. 음... 그보다 뒷부분의 '덩어리'에 대해선 할말 없는지?
    • 2008.05.29 01: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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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CPU에 여유가 없어서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어효...
    • 2008.05.29 10: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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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여유없으면 굳이 이런거 보고안해도 되는데;
  3. 2009.12.0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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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아는만큼 보인다고...
    나도 아는게 많진 않지만
    정말 친구들이 실망스러울때가 있다.
    • 2009.12.05 14: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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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망하지 마라. 진보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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