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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개같고 짜치면 짜칠수록 예수님의 사연은 더 뜻밖의 방식으로 덜컥 이해되어 버리곤 한다. "이게? 이거라고?" 싶은 충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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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태국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방콕 공항 근처에 '방나'라 부르는 '트랏'이 있고 그 지역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어떤 대형마트가 있어서, 거기에 'ESL 사이니지'를 100대쯤 설치하러 갔다 왔다.
ESL이라고 하면 엄밀히는 '전자식 진열대 가격표'를 뜻하지만, 내 회사의 "파트너"(ㅋㅋ^^ㅋㅋ)인 S모 회사가 말하는 "ESL"이란 오로지 '자기네 시스템에 등록된 상품들의 최신 정보를 동적으로 표출 가능한 단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회사의 '사이니지'는 그런 기능 빼고 모든 것을 구현 중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이니지란 '디지털 광고판'이고, 사용자가 업로드한 영상이나 사진만 커다란 화면에 보여주면 끝인 상품인데, 그 커다란 화면들을 상품 진열대에 갖다 붙일 이유는 무엇이며, SaaS 전략으로 가도 돈이 될까 말까인 마당에 특정 회사에 구태여 "락인"될 이유는 또 뭐냔 말이지.
그러나 9월의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회사는 그걸 할 수 있다고 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려 있었다. 그 '슈퍼갑' 대형마트는 S사의 비딩을 낙찰하자마자 말을 바꿔 "너네 LCD가 ESL도 되는 거지? 안되면 (이미 ESL 기능이 다 돼 있는, 다만 훨씬 더 비싼) 타사제품 쓸거야"하고는 사진 몇 장 던져놓고 나갔고, S사는 그 사진을 우리에게 던지며 "되는 거지?" 하고 화상회의를 나가 버린 것이었다. 그 사진들 속의 구현사례는 내가 최근에 작업했던 사이니지 부가기능 '템플릿'과 매우 흡사했으며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가 기술적 책임자가 됐다.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다. S사 상품을 받아와야 했으며 받아온 상품 정보를 이미지로 '구울' 수 있어야 했으며 그 이미지들의 '레이아웃'을 사용자가 임의 편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이미지나 상품이 바뀔 때마다 "연결"된 사이니지 단말기들이 알아서 '새로고침'돼야 했으니, 어느 단말기가 어느 상품과 연결되는지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정의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구현체를 VPN과 방화벽과 로드밸런서 뒤에 있는 폐쇄망 서버에 Docker로 설치해야 했다. 이 단락에 언급된 사양의 거의 대부분을 내가 전부 다 했다.
그때부터 석달간 '외노자' 신분인 날 포함한 개발 실무진 3명이 얼마나 강도 높게 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주말 특근을 했을지는 여러분이 능히 짐작하실 수 있는 바다. 한 명은 S사와의 연동만 맡아서 했고 한 명은 앱에 관한 모든 걸 책임졌고 나는 "프로덕트 템플릿"부터 "레이아웃 디자이너"며 docker 이미지 빌드 등등 나머지를 다 했다. 나날이 우리 3명의 점심 식사 대화는 험악해져 갔다. S사와의 연동을 맡고 있던 S라는 친구는 미얀마 출신 외노자였고, 애초에 사이니지 프로젝트를 그간 쭉 담당해 왔어서, 이 일을 꾹 참고 해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고, 그래서인지 주가 바뀌고 달이 바뀌면서 더 험악한 비속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걸 받아주며 중간에 "통역"을 맡았던 P는 처음 입사할 때는 분명 리액트네이티브 개발자로 왔던 것이 이제는 "앱장님", "디바이스 가이"가 돼 있었다. 그것만도 짜증스러운데 자기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던 S 때문에 얼마나 더 힘들었을지.
나는 나대로 이 회사에 처음 올 때 분명 다른 기존 상품 담당자로 들어왔었고, 그래서 사이니지 프로젝트는 곁에서 도와 주는 정도였는데, 그 도움 중 하나였던 템플릿이 갑자기 너무너무 중요한 기능이 되어 버려, 정작 그 기존 상품에 정성을 못 쓰는 것이 점점 더 불만족스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표라는 새끼는 되도 않는 SQL 전수조사며 "상대경로 변환" 따위로 놀고 자빠졌었고 테크리드라는 새끼는 jira 일감에 ======= ←이런 줄을 긋는 일이며 테이블 varchar 길이 통일하기 따위에 넋을 빼고 있었지. 그 얘기는 그냥 하지 말자.)
아무튼 그래서 10월 29일쯤에 S사 대상 중간점검 데모를 "무사히"(ㅋㅋ^^ㅋㅋ) 마치고 11월 24일 월요일에 출국을 8시간 남겨놓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거 안 되네요" "저거 빠졌네요" "미안한데 간단한 거 하나만 합시다;;" 따위 꾸역꾸역 울부짖는 에미 없는 소리에 장단 맞춰 드리며 준비 아닌 준비를 갖춰 정녕코 태국으로 갔다. 첫날은 막혀 있는 네트워크를 놓고 하루종일 "왜 뭐가 안 되지? 네트워크가 막혀 있나?" 하다가 네트워크 막혔음을 확인하고 퇴근한 덕에 차라리 제일 한가했다. 네트워크가 뚫린 둘째날부터는, 대표라는 새끼와 테크리드라는 새끼가 갖고 놀 "DB툴" 백도어부터 깔아서 (이게 내 출장 기간 동안 가장 칭찬받은 일이었다. 다른 일들은 '당연히 돼야 할 것이 된 것뿐'이었고 아직까지 정식 평가받은 바 없다ㅋㅋ^^ㅋㅋ) 던져준 다음에, '현장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정말 이건 꼭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앉은자리에서 뚜닥뚜닥 만들었다. (지금 그때 그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스페이스바가 자꾸 두 번씩 눌린다.)
일은 정말 무자비하게 많았다. 알고 보니 가격의 '소수점' 부분만 작게 표현할 수 있었어야 했고, 할인 가격의 경우 취소선을 그을 수 있게 해줘야 했으며, 템플릿의 아이템 사이에 1px 굵기의 구분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절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ㅋㅋ^^ㅋㅋ 식사 시간 간식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대표라는 새끼와 테크리드라는 새끼는 짐짓 초조해하며 나와 P (S는 10월경에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사표 이메일을 던지고 나갔다) 2명의 밥을 먹일 문제를 걱정해 주는 체했지만, 막상 그 밥과 음료는 점점 그 질과 횟수가 줄어 갔다. 당연히 그랬겠지 갈수록 지들이 초조해 뒈질 거 같았을 테니까. 애초에 지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 docker build를 돌리길 해 앱 소스를 까보길 해. 유일한 실무자가 새벽 2시고 3시고 불 다 꺼진 마트 2층 한구석 푸드코트에서 "클래식 PHP"와 jQuery로 차력쇼 벌일 동안 휴대폰이나 꼬나보다가 바깥 구경 돌아다니는 따위가 최선이었으니 (씹쌔끼들 그렇게 방관만 할 거면 숙소 가서 잠이나 처 잘 것이지) 밥이 넘어갈 리가 없고 음료 사 마실 정신이 아니었을 테며 갑자기 (몇만 바트를 들고 왔을 거면서) 모든 게 존나 비싸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넷째 날 금요일 아침이 밝았고 의외로 내가 일찍 온 편이었으며 잠시 나 혼자 그 마트 한구석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그 주변을 가만히 둘러볼 짬이 났다. 여러분은 금요일 아침의 마트를 보신 적이 있는가? 세상 그렇게 안락하고 별일 없는 세계가 얼마나 더 있을는지. 식당과 카운터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손님을 (안) 기다리고 있었고, 쇼핑 나온 고객들은 하나같이 그 지역 최고 한가한 사람들뿐이었으며, 5만 종이 넘는(다는) 풍성한 상품들, 푸짐한 음식들, 푸근한 조명, 은은한 캐롤 배경음악, 시원한 에어컨 바람, 무진장한 공짜 전기 등등에, 맡은 일 자체도 (내일 출국인 마당에 지금까지도 바쁘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라서) 그렇게까지 초급할 것 없이 전반적 안정화를 추구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문득 예수전도단에서 훈련받은 감각이 상기되었다. 아, 지금이다, 지금 이곳을 위해 중보를 해야 한다. 그러고서 눈뜬 기도로 적당히 그 지역과 사람들을 축복하는 기도나 하려고 했는데, 나온 기도 첫마디는,

주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이토록 안락한 세계에서 이토록 복에 겹게 일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던 그때의 그곳과는 같지 아니하나이다.

였다.
너무너무 놀라서 그 기도를 그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 금요일 기어코 어떻게든 뭔가를 일단락지어놓은 뒤부터 토요일 하루를 자유 여행 보내고 (주토피아2를 영어 음성 태국어 자막으로 팝콘 없이 봤다. 대충 이해했고 적당히 좋았다) 돌아온 지금까지도, 사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
왜. 왜 주님께서는 그때 나를 그 무화과나무 앞에 초대하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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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은 이 사건을 어리둥절해한다. 마태는 예의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라!!" 단언을 하지 못하고, 마가는 들은 바를 시간 순으로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양 맥락 모르겠는 전언을 기계적으로 타전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주제성구로 하는 대다수 설교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을 갸우뚱해한다. '무화과의 철이 아님이라' 하는 언급에서 간신히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운운을 뽑아내는 것이 주류 신학의 최선인 듯싶다. 나도, 이 사건이 여기 삽입됐어야 하는 가장 객관적인 해석으로는 같은 관점을 꼽을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상황은 시분초 단위로 다급히 돌아가고 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따라올 수 없을 거면, 철 안 든 무화과라도 백번 할 말 없지 뭐.

근데, 뭐랄까.
일이 힘들고, 갈 길이 멀고, 할 일과 전할 말이 너무 많고, 하루하루가 숨이 차게 바빠 죽겠는데,
뭔가 먹을 것이 있어 보이는 풍성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실제로 도움이나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면,
"에라이 나가 죽어라!" 소리 정도는,
하실 만도 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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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녁에 숙소 들어가 씻고 자려니 P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제가 치맥 시키면 같이 드실래요?" 사실 각자 밥 먹고 자자는 분위기였어서 혼자 편의점 내려가 이것저것 주워먹은 터였지만, 치킨 정도는 들어갈 자리가 있었고, 애초에 그런 초대는 나 같은 극I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 "와 너무좋네요" 즉답하고 1층 호텔 라운지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맥주 한 캔을 비운 P는 문득 내게 말했다. 저 퇴사하는 거, 이번 출장 봐봐야 될 거 같아요. 말인즉슨, (사이니지라는 신사업이 개척되던 그의 입사 직후 시기 이래) 특히 지난 석 달 동안 그가 내내 했던 생각이, "이거 해서 뭐가 되나?"였다는 것이다. 맨날 이거 돼야 한다 저거 돼야 한다 말이 많고 그래서 늘 억지를 써서 겉으로 그럴싸한 것이 되게 해 온 것이 자기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의 역사인데, 그래서 '이게 다 뭐지? 진짜 100대를 설치하긴 하나? 서버가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일걸? 확 터져버려라 그래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하고 벼르면서 지난 몇 달을 참았다는 것이다. 근데 막상 와서 보니.. 뭐가 되는 거 같고 자기가 한 일에 결실이랄지 의미가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퇴사할 결심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뭐 겉으로 보면 짜장 그렇다. 대체로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냉동식품 진열한 냉동고 위에 장치 3대 이어 붙여서 "비디오월(서로 다른 영상 n개를 m개의 장비에서 타이밍 맞게 루프하는 구현을 말한다ㅋㅋ^^ㅋㅋ)"로 냉동식품 광고 영상 보여주고 있고, 그 옆에는 무슨 상품이 원래 가격 얼마였는데 취소선 긋고 지금은 얼마다 라고 표시를 실제로 해주고 있고, 그런 식의 "아일랜드"(어떤 매대는 벽도 통로도 없기 때문에 '섬'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9개를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걸 했으니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삼겹살 먹으러 갔던 것이다. 대표라는 새끼는 봉투도 없이 2천 바트를 건네며 다음날 개인자유여행에 맘껏 쓰라고 하셨다. ^^ㅋㅋ) 솔직한 말로 나도 금요일쯤에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만 힘들었을 뿐이고 앞으로는 나아질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 견물생심은 다시 쏙 들어가고 입장은 다시 확고해졌다. 이건 잠깐의 착시고, 그 나무는 여전히 무화과를 맺지 못할 것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소프트웨어 회사는 상품을 단 한 번만 개발한다. "유지보수"는 돈 받은 곳에 한해서 마지못해 진행하고, 그나마도 (실무자를 딱 한 명만 뽑아서 noonchee가 있는지 석달간 검증하고는 전부 떠넘기고 외면하는 패턴으로) 무책임하게 하며, "연구" 따위는 언감 생심인 곳이다. (아니 씨발 기존 제품들로 웹소켓을 n년간 겪어 봤으면 웹소켓에 상태가 존재한다는 거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 socketio 서버를 스테이트리스 서버리스인 AWS apprunner에다가 배포해 놓고 당연히 안 되니까 당연하게 폴링을 적용해놓고 그걸 씨발 해결이랍시고 오리발 내밀어 놨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래놓고 지가 socketio 할줄 안다고 거드름이 쩔겠지? 그 잘난 30년이 다 이런 식이었겠지?) 하지만 그 단 한 번에서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고 풍성하고 그럴싸하게 구현되는 탓에 그는 그가 모든 것을 해낸 줄 알고, 그걸 감히 팔아도 되는 줄 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내 회사 제품을 쓰는 모든 분들께 어찌 죄송한지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맡은 상품도 S가 맡았던 상품도 영업 멘트 약속만 무성할 뿐 실제로는 그 약속을 ("poorly"라는 표현이 딱맞게) 간신히 한심히 겨우겨우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사이니지는 그 3번째 상품이다. 앞전 두 상품에서 일어났던 모든 폐해가 명백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이번 '태국건'의 '테크리드'를 맡은 그는 이전 상품에 대해서도 '기획/QA'를 했었다. 남이 뭐라건 팩트가 뭐라건 다 모르겠고 결국 자기의 언질이 무조건 항상 옳고 바르고 좋아야만 하는, 자기가 오해했거나 틀렸거나 하는 역사는 있어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인간인데, 그 예리하고 고매하고 아는것 많은 능력 가지고 프로젝트에서 잡아내는 디테일의 6할이 실무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생트집이다. 그치만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 노하우로 25년간 그렇게 성공적으로 무수한 프로젝트를 훌륭히 끝내 오신 노오련한 프리랜서님이신걸. ㅋㅋ^^ㅋㅋ 그런 사람 밑에서는 자연히, 뻔한 기능은 더 뻔하게 구현되고, 낯설고 도전적이고 누군가의 독박을 필연으로 하는 기능은 더더욱 관조, 방치, 이미모두가다알고있는것또괜히말해보는아무짝에도쓸모없고성가시기만한참견 으로 점철되게 마련이다. "와 이거구나! 그동안 기존 제품들이 이건 왜 이따위고 저건 왜 저딴 식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돼온 거였구나! 정말 대단한 25년 경력자야!"를 석달간 골수에 사무치게 납득하며 아드득 바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기를 출국 10시간 전까지 그랬고, 재입국 48시간 전까지 그랬다. 대표라는 새끼는 그 D-DAY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공연히 더 큰 공수표를 발행했다. 이 대형마트가 태국에 몇백 개 지점이 있고! 지금은 100대지만 1000대, 10000대 할 수 있고! 지금 PO가 하나 더 들어오려고 하고 있고! S사에서 우리를 되게 좋게 보고 있고! (당연하다. S사가 '일단 만들긴 만들었는데 뭔가 애매하게 쓸모가 없네' 하고 있던 제품군의 쓸모를 겨우 만들어 준 것이 이번 프로젝트였다.) 무슨 이사도 연락을 주고 어디 지부에서도 얘기가 오고 있고 두바이에서 고객이 호주에서 연락이 어쩌고 저쩌고. 당연히 그 약속들은 하나도 약속이 아니었다. 사업의 근본에 아무 조짐이 없었고, 리더십 역시 아무 변화 없이 제 본색대로 신났을 뿐인데, 숫자가 좀 큰 게 뭐 어떻고 나라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면 어떻단 말인가? 나중에 유지보수 할 실무자들이 사과할 고객 사과할 나라만 더 많아질 뿐이겠지. 그 유지보수 실무자가 나일지 누구일지 모르겠지만. 뭐 나? 아니 나는 못 해요. 와우 씨발. 안 해. 돈을 3배를 줘도 난 싫고 사업규모가 9배가 된대도 거절이요. 많이들 하세요 난 갈라니까.

기둥과 뿌리가 막상 아무 열매도 맺지 않는데, 그런 나무가 가지를 하나 더 치면 무엇하고 잎을 하나 더 열면 뭐냐 말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걍 지금 콱 망해 버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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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고사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효과만이 있었던 몇 안 되는 표징이다. 오병이어도 숱한 치유 사역도 전부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 효용과 이득이 있었으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기적 중 '딱히 누군가에게 득이 된 건 없고 그냥 불가해하기만 한' 일들도 분명히 있었다. 물 위를 걸으셨다든가, 변화산에서 변화되셨다든가. 그리고 이 무화과나무 고사 사건도 그런 축에 든다. 워낙 이상하고 뜬금없는지라 모든 복음서가 일반적으로 공통 기술하지 못할 정도다. 누가의 예수님은 너무나도 인간이고 요한의 예수님은 너무나도 "말씀"이시기 때문에 둘은 이 사건을 언급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님을 진술한 복음서들만이 이 사건을 취급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은 극히 드물게 예수님이 뭔가를 '죽이신', '파괴하신' 사건에 속한다. 달리 또 예수님이 망가뜨리신 게 뭐가 있었지? 돼지 떼 몇백 마리, 성전 뜰의 돈 바꾸는 장터 (요즘으로 치면 큰 교회 문간에 있다는 은행별 ATM 기기들?) 정도였지 않나? 예수님은 항상 누군가를 살리고, 건지고, 고치고, 먹이고, 마시우고, 이끌고, 모범을 보이시고, 하여간 내내 건설적인 일을 해나가신 분이었고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으시"는 분 아니었던가? 그런 분이 어떤 생명을 의지적으로 파괴하신 사건이 있었다고? 그게 이 무화과나무 사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사건은 그렇게까지 일화적이거나 우연적이지 않고, 조건적으로나마 납득 가능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 그 정도의 중요도는 있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손봐주셨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돼지떼는 거라사 광인의 '군대' 즉 많은 귀신들이었다. 성전에서 야단을 놓으셨던 대상은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었다. 그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되 열매가 없는 나무였다. 공통점은 그것들이 악하다는 것이었다. 귀신은 당연히 악하다. 성전에서의 상인들은 악한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원하셨던 바 추구해 마땅할 도덕/이상/이념("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파편화, 제도화, 영리화("강도들의 굴혈")하여 실질 없는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복무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무화과나무도 악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과 역사에 아랑곳 없이, 자기의 때와 자기의 시간에만 혼자 저 잘나서 부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눅12:16-21, RNKSV)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눅6:24-25, RNKSV)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욕하고 경계시키시는 것이 바로 이런 부류다. 때도 분간치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도 관심 가지지 않고, 오직 자기의 소출, 자기의 재산, 자기의 가지와 잎사귀 무성해지는 일에만 오만 열심인 모든 자 모든 것들. 이런 부류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오늘밤에 죽여버리겠다' 같은 비유나 드시고 "화있을찐저! 화있을찐저!" 저주도 서슴지 않으셨던 예수님이다. 그런 예수님이 몇 년에 걸쳐서 준비했던 프로젝트 — 죽음과 부활 — 가 드디어 당일이 닥쳐서 현장 실무를 진행 중인데, 그래서 인간적으로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눈앞에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과실나무가 있을 것 같으면, 그 과실나무가 그 프로젝트 — 100% 하나님 나라 사역인 — 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시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예수님이야 이렇게 힘들든 말든, 자기 혼자 자기 계절이나 만끽하면서 혼자 싱싱하고 혼자 신나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으셨을 거 아닌가?

연관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비슷한 처지 비슷한 광경을 겪어 본 나로서는 그렇게 독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방콕 한구석의 일주일간 내 눈앞의 세계는 나만 빼고 다들 너무나 안온하고 별일 없이 태평했다. 나는 지금 당장 이런 일 저런 일들을 해내야만 하는데, 안 그러면 (적어도 나의) 세상이 전부 와장창 무너질 거라고들 야단인데, 막상 그렇게 내게 야단을 놓는 이들은 하나도 야단이 아니었다. 내 앞의 대표며 테크리더는 "여기 1층에 마사지샵 있더라 내일은 교대로 마사지 받으러 갑시다?" 따위 개소리나 씨부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이 빌어먹을 슈퍼갑 대형마트조차도 나의 이 임무, 이 고생, 이 절박함을 알 바가 아니었다. (사실 마트 측 사람과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다. 너무 이상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 임무가 망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그냥 별일 아니었을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애초에 이 마트의 '리뉴얼' 자체가 핵심 큰일이었고 내 회사의 "LCD"는 그 리뉴얼의 정말 작은 일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호들갑 떨며 공연히 의미 부여한 것이 과례였겠다 싶을 정도로.

예수님도 비슷하지 않으셨을까? 심지어, 이게 나만 잘 하면 그만이냐 하면 그게 또 아니라는 점조차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계속해서 "미안한데 이거까지는 합시다 고객은 뭐다? 무조건 옳다!"(염병 좆을 까고 자빠졌네 그건 소금 치고 쿠폰 뿌려서 해결되는 장사에나 쓰는 말이고요 이 씨발아) 소리에 예 예 하고 따르며 막판까지 스스로를 갈아넣던 그 때, 내가 힘들었던 건 일 자체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애를 써서 나아지는 게 뭐지? 이게 그렇게 도움이 되나? 이러면 정말 세상이 더 좋아지긴 하나? 아무리 봐도 그냥 마트 상품 가격 몇 개 보여주면서 옆에 광고 띄우는 게 단데? 이깟 것 아무리 잘 하고 예쁘게 해봐야 이 대형마트 장사에나 도움 되고 이 S사 단말기 세일즈에나 도움 되고 결국 일회용품 장치, 쓰레기 데이터 양산하며 대자본들 배나 불려 주고 뼈다귀 살점 좀 받아먹는 겨우 그딴 짓거리 아닌가? 이게 정말 예수님께서 기껏 구해 주신 백년짜리 목숨의 지적 능력의 최대치를 투여해서 할 가치가 있는 일이 맞나? 뭐 이런 수준으로까지 확대된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도의 첫마디는 그런 차원에서 정직하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2천 년 전 예수님 사역하시던 세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이 좋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풍요, 호화, 여유, 최첨단 따위뿐이었고 순간 나의 이 고생은 오롯이 나의 억하심정 자격지심일 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좀 힘들다고 그걸 불평하면 쓰나? 하는 생각을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찰나조차도 허락지 않으시고 바로 보여주신 것이 그 무화과나무였다.

아니야. 불평할 수 있어. 나도 그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어.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내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그 나무. 날 도와줬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도 도와주지 않았던, 자기 변명만 크고 자기 혼자만 풍성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세상으로 회복시켜 나가는 과정에 아무 역할도 의미도 없었던 그 나무. 나도 솔직히 그때는 그냥 좀 울컥한 것도 있었어. 지금 네가 느끼는, 저 끝없이 늘어선 매대며 한쪽에 너희가 다소곳하게 설치 중인 그 장치들과 그 아래 진열된 "상품"들이며 그 주변을 서성이는 너의 "상사"들을 보며 느끼는 그 울컥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가 죽으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나무는 죽고, 제자들은 '진짜 죽었네요' 그러는데, 사실 그때는 뭐라 둘러댈 말이 없어서 둘러대느라고 말이 길어졌어. 솔직히 '일이 너무 개같고 상황이 너무 짜쳐서 홧김에 죽였다' 그럴 순 없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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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찬가지로 이 글이 계획에 없이 너무 길어졌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난 한 달, 아니 지난 석 달, 아니 최근 반 년, 아니 지난 1년하고도 3개월 정도가 그냥 개같고 짜쳤다 한 마디면 됐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주절주절 뭔가를 적어놓은 것은, 그런 더럽고 치사하고 힘든 세월의 정점의 한복판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여 저의 세계는 이렇게나 안락하고, 주께서는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던 주님이시니이다. 이런 과하게 에피파니적인 순간들이 있는 탓에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지 못하겠는 면이 하나 있는가 하면, 이야말로 이 지난 세월을 가장 바르고 짧게 요약하는 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한 측면이다.

어쩌면 이 자본주의 체제가 통째로 그 무화과나무인지도 모르겠다. 소문은 무성하고, 어떤 성취는 그 규모가 무시무시하며, 그래서 겉으로는 무언가 실질을 기대할 만해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을 살리는 열매는 아무것도 없고 지금은 철이 아니라는 식의 뻔뻔한 변명만 튼튼한 피조물. 그리하여, 아낌없이 찍어서 불구덩이에 던져도 하루아침에 말라 비틀어 죽어 버려도 아쉬울 것 없는, 대체 그게 다 뭐냐 싶은 풍요. 자본주의 사회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지금까지 다닌 이 회사 하나만큼은 확실히 그런 피조물이었다. 그 토요일 자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Grab 콜택시 안에서 왼편에 스쳐 지나가는 그 대형마트 현장을 바라보며, 퇴사를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은, 그래서다.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의 교훈은 명백하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시장하셔서 잠시 들러 보셨을 제 생명 살리는 데 소용 있는 뭔가가 아무것도 없을 경우, 그게 무엇이/누구가 되었든, 그 최후는 명백히 그 무화과나무의 전철 그대로 즉각적이고 최종적인 고사일 것이다.
그 마트는 어떻게 될까.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고, 이 사회는, 이 체제는,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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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siyon1004님 혹시 이 글 보고 계십니까? 지금이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나는 2025년 한 해 당신과 같이 일하고 싶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나만 그랬을 거 같나요? "나는 그게 궁금해." 아무튼 알아서 혼자 외로이 죽으시기 바라고, 내 인생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십시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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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하는 예의가 아닌 거 같긴 한데 좀 우울한 얘기를 써볼까 한다. 근황이 다소 울적한 때문에.

  • 회사 일은 최근 반 년 정도를 거의 놀았다. 아니 그렇다고 정말 논 건 아니고, 휴가도 잘 안 써 가면서 꾸역꾸역 출근해 앉아 있다 오긴 했고 이런저런 일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개발팀 동료, 시니어, 팀장님 파트장님 CTO님의 공적이고 나는 "쉬운 일 주워먹기"만 하다가 끝나곤 했다. 당시에는 "내가 암만 이러자 저러자 해봐야 결국은 동료, 시니어, 팀장님 파트장님 CTO님들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지 않나"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렇긴 했지만,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나 스스로도 "2년간 기반 없이 굴렀으면 됐지 이젠 나도 회사 좀 편하게 다니자" 하면서 일을 주워먹은 면도 있었던 거 같다.
  • 아무튼 정말 단 1인치도 성장하지 않은 나 자신을 목도하는 요즘인데 이게 김어진쇼도 비슷하다. 270회 넘게 에피소드를 발행할 그 긴 시간 동안 콘텐츠로서의 김어진은 단 1인치도 개선되지 않았구나 싶은 좌절감이 있다. 270가지 서로 다른 뭔가를 해나간 270주라고 생각했는데, 딱 1가지의 뭔가를 270가지의 포장으로 팔아치우기 급급하면서 무슨 개인 취미가 어쩌구 일상의 기록이 저쩌구 핑계만 는, 그런 시간이었나 하는 좌절감이 있다. 끝낼 때 끝내더라도 6주년은 채우고 끝낼 건데 솔직히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 성장이랄지 변화랄지 하는 건 좀 하고 싶은데 어케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의 즐거움은 웬 중국제 휴대용 게임기를 하나 사서, 어릴 적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게임들(만)을 채워넣고 틈날 때마다 하는 건데, 내가 정말 정말 정말 게임을 못한다는 사실만 재삼 절감하며 좌절하고 있다. 돈이라면 있다(실제로도 있고, 까짓거 에뮬레이터의 Start 버튼만 누르면 크레딧은 들어가니까). 시간도 의지도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데 정말이지 나 스스로 알겠을 정도로 "게임 운영"을 너무너무 못한다. 아직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익혔어야 하는 감각을, 이제 와서, 혼자, 어릴 적의 한을 푸는 차원으로 배워 보려고 하니 이게 되겠는가. 난 심지어 2048도 못한다. "512"를 못 보고 6000점대에서 죽기가 일쑤다. 남들은 다 떼고 워들 같은 거나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지하철에서 휴대용 게임기로 2048 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지고 또 지고 또 지는 35살 남자 어떻게 생각해요?
  • 게임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대체로 이렇게 울적한 심정으로 살고 있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필요가 있는 와중에 그놈의 스트레스 해소라는 건 또 당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요즘은 재밌는 콘텐츠를 즐기거나 맛집을 다니는 것도 약발이 잘 들지 않는데, 왜냐고 하면 그냥 기분 때문이다. 내가 먹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것들은 분명 설탕과 지방을 뒤집어쓰고 있을 테고,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모든 앱과 그 안의 모든 콘텐츠는 분명 내 뇌에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줄 터이다. 그 부분이, 그렇게 자동적인 쾌감과 보상이 보장되어 있다는 바로 그 점이 께름칙하다. 이게 이렇게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하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나도 그렇다. 최근 군것질을 줄인 이유는 당뇨 위험부터 다이어트까지 여러 가지 있지만 최근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 자주 보상을 주지 말자'라는 부분이 추가가 되었을 정도다. 뭐랄까, 이걸 이토록 간단하게 해소해 버리는 건 너무 허무하달지 셈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찜찜함을 느끼며 결국 대체로는 그저 눌러담아 참고 있다.

울적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울적한지 모르겠다. 사실 마음의 습기는 항상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울화도 항상 일정량은 마음에 차 있는 편인데(그래서 한숨을 쉬는 버릇이 있다 항상 어느 정도는 갑갑하거든.) 그게 왜 요새 들어 유난히 감각되는 건지 그걸 모르겠다. 몸이 흔들리며 마음까지 흔들리다가 이제 몸이 차분하게 안정되니까 마음의 흔들림이 뚜렷이 보이는 뭐 그런 원리일까. 이 이상은 심리학적으로 틀린 소리가 될 테니 이 얘기는 여기까지.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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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엄청나게 간단한 얘기다. 개발자는 특수한 직군이지만 특권을 가진 직군은 아니다. 그나마도 내 생각엔 개발자가 특수한 직군인 것도 지금 한때나 그러고 말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개발자건 다른 어떤 직군이건 어떤 직군이 타 근로자와 일반 공동체로부터 '이해 불가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를 자동으로 획득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도는 무력화돼야 하며 그런 욕망은 제압되어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사익이 공익을, 엘리트가 일반 대중을 압도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이렇게 서본결이 완벽한 간단한 아젠다가 어째서 거듭 되풀이 성토되고 있는지 그게 오히려 희한하다.

-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 바로 이것이 쿨타임만 차면 돌아오는 바 '일부 짜증나는 개발자들에 대한 짜증'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시점의 현업 개발자들은 (또는 블로그와 유튜브로 코딩하는 "개발자"들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신들이 '개발자'로 라벨링되는 과정을 즐기고 있거나 최소한 의식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뭐 그건 개발자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교수 등등 전문 지식으로 먹고 사는 직군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사회 자본에 대한 욕망의 발로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 개발 직군이 전문 직종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런 차원에서 튀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더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업계의 미성숙이다. 다른 글에서 한 번 슬쩍 건드려본 적이 있긴 한데 개발이라는 분야는 현재 매우 초기 단계에 속하고 그래서 법령/표준 도입, 정량적 능력/성과 측정, 표준 근로 프로세스 등이 존재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업/서비스/종사자도 명쾌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어떤 성공/실패도 필연적이지 않다. 이러므로 실제로 이 분과는 현재 어느 정도는 실제로 이해 불가한 영역이며 제3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객관적 접근 시도가 (주로 당사자에 의해) 무산된다.

- 개발 직군이 다른 전문 직종들보다 유난히 더 스스로를 신비화/특권화하려고 하는 현재의 경향의 다른 추가적 요인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직군이 갖는 인구통계학적 편향이다. 절대 다수가 남자이고 상당수가 2030이며 이념 스펙트럼상으로는 대체로 가운데-오른쪽에 쏠려 있다. 하루 종일 코드만 쳐다보고 사는 그들의 사상은 결과적으로는 목적 지향적이며 단순한 계량적 공리주의로 쏠리고, 그들의 윤리는 (반사회적이진 않더라도) 비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취사선택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게다가 사회가 "4차 산업 혁명 고액연봉 개발자 우대 전쟁" 운운하며 떠받들어 주니, 이 과정에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와 동떨어지는 엘리트주의적 동조 집단을 형성하고 만다.

- 이런 식으로 특정 전문직군의 특권계급화가 시도되려고 하는 시기에 공동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 생산 수단 및 생산물을 최대한 공공화하는 작업이다. 거시적으로는 (그 빌어먹을 놈의) "AI"를 사용하는 기업마다 회원 가입 약관 및 정례 보고서를 통해 그 기술의 작동 원리 및 작동 현황을 공개하도록 규제하자는 얘기까지도 해 볼 수 있겠지만, 미시적으로는 "저는 개발자라서", "근데 개발이라는 분야는"으로 시작하는 '야부리'를 금지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런 '썰'을 수시로 제지시키고,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된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로만 그들을 다시 엄격하게 측정해 줌으로써, 자기의 중량을 과대 평가하려는 시도 일체를 저지해야 한다.

- 우리말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하는 말이 있다. 기백 년 전 조선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 운운하는 복잡한 전문 지식은 존재했고 그에 대한 당시 언중의 사태 파악도 진작에 끝났던 것 같다. 우리도 슬슬 상황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날 개발자들의 갖은 장광설과 자기 변호성 웅변들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이썬 놔라 슬랙 놔라' 하는 소리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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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어진쇼라는 것을 하고 있다. 기본 토크쇼이고, 평범한 사람들 데려다가 별 말도 안 되는 얘기 가지고 아무말 잔치를 한다.

이것은 모랄까 지난 몇 년 간 콘텐츠 바닥에서 굴러 본 이후 약간 재활 비슷한 느낌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황금률들을 거의 전면적으로 초탈하려는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

  • 콘텐츠는 재밌어야 한다는 것.
    재미란 건 보통 두 가지인데, 만들어 팔 때의 재미와 사람들의 반응에서 나오는 재미다. 첫 번째 것은 유지 가능하다.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워낙 강렬해서 적잖은 이들이 그걸 다시 맛보고 싶어 발버둥치고 끝에 가서 헛다리를 짚어 자빠진다. 재미있게 할까 재미없게 할까 싶을 때는 재미없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누구 말마따나, 노 잼 노 스트레스.
  • 콘텐츠는 특정한 내용이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용이나 목적은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최소 몇 분간 이어폰 끼고 이걸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 짓을 한 보람은 줘야 한다.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목표치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그건 고스란히 과제가 되어 사람 목을 조른다. 이거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
  • 콘텐츠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일관성 역시 마찬가지로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칸트에 따르면 모든 게 매번 너무 다르면 아예 인간 인식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 일관성을 가지고 해내려는 "브랜딩"이라는 것 역시 사실 좀 부질없는 (혹은 불가능한) 무언가에 가깝다. 특히 아마추어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 콘텐츠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
    스윙 자체를 존나게 많이 휘두르면 누구나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추어 얘기고 프로라면 타율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게 이득이다. 최악은 수량을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재미도 감동도 없는 걸 자기착취해 가며 만드는 짓이다. 씹노잼 폐급 파일들 말고는 남는 게 없거든.
  •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 이건 완전히 틀렸다. 제작자로서만 말하자면,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사람들이 도대체 뭘 좋아하냐고? 그래서 우리는 몇 달간 "트렌드"와 "이슈"를 팔로업하는 훈련을 해 보았고 남은 건 그냥 네이버 실검 보는 게 빠르다는 교훈뿐이었다.
  • 영상 콘텐츠는 짧아야 팔린다는 것.
    누가 그걸 모를 줄 아나 보지? 그러면 뭐 짧으면 짧을수록 막 반비례해서 팔리게? 다들 부탁이니 일차함수적인 사고방식을 만나면 의심을 좀 해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본 적지 않은 골드 유튜버들의 영상은 3분은커녕 10분도 넘길 때가 많다. 길이는 가장 irrelevant한 변수 중 하나다.
  •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자기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
    이건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아무 연관 없는 것을 굳이 찾지 않는다. 수긍은 순순히 하지만 그냥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 부분은 포기하고 있다.
  • 기왕 하는 거 뭔가 남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것.
    이건 바꿔서 물어보고 싶다. 뭐가 안 남는 건 안 해야 하나? 오히려 뭐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덤비기 시작하면 그건 그거대로 불행할걸? 왜냐면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뭐가 안 남거든.
  • 어쨌든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것.
    김어진쇼는 "지나치게 유명해지면 그만"할 계획이다. 예컨대 방송 섭외 요청이 들어오면 "김어진쇼가 어제 망했기 때문에 안 됩니다" 하고 거절할 생각이다. 이게 무슨 투석이나 핵분열 발전도 아니고 마지못해 계속하는 짓을 할 거면 애초에 하질 말았어야지 말이다. 언제 그만두어도 문제나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 걸 해야 한다.

아무튼 뭐냐면 결국 주객의 전도로부터의 해방을 하자는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상당수가 인생을 바쳐 콘텐츠를 소환해 인기와 성취를 얻는다. 다들 정신 좀 차렸으면 싶다. 그깟 게 뭐라고 삶을 바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냥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인생 그 자체를 일단 잘 살란 말이야. 왜 있잖아 사람 만나고 밥 커피 술 사고 농담 주고받고 뭐 그런 거. 그러다가 만약에 혹시 괜찮으면 기념사진 찍듯이 기념영상 찍어놓고 최소한의 편집만 해서 남겨놓고 그 정도면 안 되겠냐구.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막 장소 빌리고 사람 빌려와서 오만 생쇼를 하냐고. 뭔 지랄 염병을 떨어본들 YTN 하루 시청자 수에도 못 이길 일인데.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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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고 싶던 테마였는데 이번에 무한도전 "시즌1" 종영을 기념하여 아주 콤팩트하게 써본다. 이거보다 길어지면 나도 헷갈리고 모두가 헷갈리는듯.


세트장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해진 개념이지만 예전에는 '버라이어티 예능'을 하기 위해 도입된 혁신적 장치였던 세트장이란, 어떤 굉장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보장받기 위해) 각종 장치와 설비가 고안되어 작동하는 기계/전기 조립체 일체였다.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울고 웃고 때리고 뒹굴며 '오락 프로'를 만들었다.

세트장은 목적지향적, 결과지향적 엔터테인먼트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세트장을 만드는 이유 자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그림'만큼은 '따내겠다'라는 의지에 있기 때문이다. 세트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대신 그 반대 급부로서 주어진 규격과 분량에 맞춰서, 계산된 재미를 위해서, 모두가 각본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세트장은 21세기 초엽까지 우리에게 주어져 있던 성장 중심적 계획과 사회의 첨병에 다름아니었다. 어떤 목표와 도전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장하는 대신, 각 개인의 계획과 규격, 행복의 기준과 방향을 제어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았고, 그게 어느 정도 순기능을 했다. 우리는 한때 대형 버라이어티 쇼의 거대한 세트장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았던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무한도전은 바로 이 '세트장'을 빠져나오려 하는 예능이었다. 아하 게임을 하던 '스튜디오'(그것은 최소한의 의미에서의 세트장이기도 하다)에서 시작한 그들은 장충체육관으로,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것들은 좀더 세트장에서 멀어진 것이다) 가더니 지하철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어딘가로(여기서부터 세트장이 아니었다)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물리적인 세트장을 탈피해 왔다.

한때는 전형적이고 다소 상투적이기까지 했던 방송가의 물리적 세트장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큰웃음이 보장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모내기 특집이 그랬다. 비 오는 논두렁에서 뒹구는 일은 그 자체로 시답잖게 우스운 것이다. '세트장 아닌 세트장'을 통해 변칙적으로 재미를 확보하는 이러한 의존성은 최근의 방콕 특집 같은 것에도 발견되었던 바다.

아무튼,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적 세트장을 벗어나기만 해서는 머지않아 '(성장 발전상의 )동력' 자체를 잃어버릴 것을 직감한 TEO 사단은 새로운 세트장을 구성한다. 바로 관념적 세트장이다. 무한도전은 갈수록 'OOO 특집'의 이름으로 특정 주제/과제/컨셉을 내걸고 이것 하나에 모든 여건과 아이디어와 몸개그를 전면 집중해 70분을 채우는 (그걸 실패한 '특집'은 통편집되어 재방송을 타는) 체제를 만들어냈다.

왜 관념적 세트장이냐면, 기존의 세트장에서 볼 수 있던 철골 구조물, 카펫, 폭죽 같은 물리적 요소들은 사실상 없어지되 개그, 상황극, 캐릭터, 도전, 팀 꾸리기, 액션, 교훈, 사회적 의의 등등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특정 감동과 재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계획대로 잘 될수록 그 특집은 레전설이 되었고, 잘 안 되었을 때는 통편집되어 창고에 박혀 있다가 발굴되곤 했다.


그들은 과연 세트장 자체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방송의 본질상 70여분간 별 요점이 없는 신변잡기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의 지난 십몇 년 역사상 그들은 성장주의, 목적주의, 성과주의에서 결코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각본과 세트장이 주어지지 않는 예능에서도 빅재미를 만들어낸다며 뛰쳐나간 그들이 정작 스스로 만든 각본과 세트장에서 낑낑대게 된 꼴이란 아이러니가 아니면 무엇인가.

심지어 '쉬러 간다', '우천시 취소하는 특집으로 한다' 같은 관념적 세트장을 나가는 듯한 기획마저도 사실은 치밀하게 (또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각본, 체계, 어떤 그림을 무조건 따내기 위해 고안된 설계와 배치로 기능했다. 방송이니 그래야만 했다. 심지어 무한도전은 리얼 예능을 표방한 탓에 오히려 그 반대로 작위미, "일부러 철저하게 어떠어떠하게 한다" 하는 기획이 주는 즐거움도 넘볼 수 없게 됐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시즌1" 종영은 시사적이다. 이렇게까지 일부러 대본과 내용구성, 로케이션 등을 '어기고' 다닌 방송은 일찌기 없었는데, 그런 쇼가 유지 불가능성이 가시화된 이후로 그걸 끝내 부정하다가 마지못해 마침내 수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이기를 표방하는 이상은,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기획, 각본, 목적하는 결과의 집합체(set)에서 실행되게 되며 그래야만 한다."


무한도전은 자기가 얻어야 할 교훈을 이미 다 얻었겠지만, 그걸 보며 몇 년을 함께한 일반 대중은 과연 어떤 교훈을 제대로 얻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삶 여러 영역에, 사실은 불가능한 그리고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성장주의 계획이 삼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물리적 세트장을 가질 수 없었기에 철저히 자신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자본과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었던 일반 대중도, '디카'와 스마트폰을 손에 넣으며 다른 의미에서 물리적 세트장 없이 '쇼'를 해 오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쇼는 쇼이므로 이들에게는 크게 둘 중 한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무한도전이 그랬듯 각종 컨셉과 설정으로 무장한 관념적 세트장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인생 전체를 물리적이고 통합된 세트로 구성해 버린 것이다.

둘 다 별로 건전하지 못하다. 전자는 경제규모 상위국가의 대표 민영방송사의 간판 예능조차 끝내 버티지 못한 고강도의 정신 노동을 일반 대중 개개인이 감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후자는 속된말로 자기 인생을 팔아서 관심을 얻고 유지를 하는 마이너스 게임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보고 배운 것은 무한도전이나 인간극장, 세상에 이런일이 등이었을지언정, 그들이 정말 그것을 동경하고 모방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탈-세트장 예능의 대표주자였던 무한도전의 종언 이후 가장 질서 있는 퇴장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냥 순순히, 물리적이고 인위적이며 전면적이고 조작적인 계획의 존재를 인정해 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쇼"라고 이해하는 세계는 철저히 그 계획 속의 세계로 한정하고 샌드박싱하여, 그 안에서만 쇼의 문법과 방식이 작동하게 내버려두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그 밖에 나와 있는 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아주 그로테스크한 만화의 작가가 될 수는 있겠으나, 작가로서의 그를 예능 방송 게스트로서의 그의 자리에 불러내는 일은 하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더라도, 자기 개인사를 죄다 털어놓는 지금 대다수 유튜버들의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채널 속 자아를 좀더 허구적 체계로 확립하고, 분리 관리하며 그것을 게임의 룰로 이해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요는, 쇼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어쭙잖게 대본과 세트장과 계획과 목적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다간 실패만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무한도전 역시 무한하지 못하게 도전을 멈췄다. 우리는 아직 목적지향주의 자체를 중단하고 그 너머를 상상할 만큼의 급진성과 거기 따르는 각종 능력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으므로, 쇼는 결국 쇼이니 순순히 세트를 짜고 그 안에서 행동하자는 겸손한 교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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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포주 레진

2018. 1. 31. 05:50

한희성 씨가 레진코믹스 불공정계약 폭로를 진행한 작가들을 고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인신을 좀 비방해볼 양으로 써본다.

포주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끌어안을 포[각주:1] 에 가진놈 주 자를 써서 포주라고 하고, 창녀를 고용해서 그들과 같이 지내며 그 영업을 돌봐주고 수익을 얻어먹는 자를 부르는 말이라 한다. 그렇다면 레진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본질적으로 포주(抱主)다. 웹툰 작가님들이 기생이란 얘기가 절대 아니라, 레진이 자기가 취급하는 대상들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기생 창녀로 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애초에 그 소위 야동 블로거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걸 직함이라고 부르자면) 그 직함이란 게 무엇인가? 조직적으로 제작 생산된 음란물을 제 블로그에 들여와 늘어놓고 짐짓 진지한 체 오시오 보시오 사시오 하면서 방문자와 인기를 벌고 공개적으로 낄낄거리는 것이 아닌가? 비디오 속에서 필사적으로 제 몸 파는 “창녀”들이 있고, 그걸 영상으로 찍고 유통을 하며 파는 포주들이 있었다면, 레진은 그 포주들이 던져주는 각종 ‘품번’들을 주워와 주섬주섬 되파는, 그야말로 리셀러 포주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던 자가 뜬금없이 웹툰 사업을 한다기에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도, 처음에는 그저 좋게 생각했다. 성인용 만화를 파는 게 수익의 본질인가보다, 그놈 참 아닌 체하면서 꾸준히도 밝히는 놈일세, 하고 말았다. 그런데 폭로되는 내용들을 보면 볼수록 이해가 되지 않고 ‘이게 대체 무슨 사고방식으로 나오는 짓인가…?’ 하는 의문만이 커졌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연재처와 편집부를 자처할 셈이면, 막말로 작가와 척을 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

소위 ‘지각비’, “모든 작품을 프로모션해야 한다면 우린 프로모션 안 하겠다”, 유난히 레바를 밀어주며 재밌는 웹툰 사이트를 강조하려는 알리바이 공작, 말도 안 되는 수익 배분률, 편집부라고 믿을 수가 없는 방조와 방치와 무관심, 각종 관계자들의 성추행이며 비방 발언과 사생활 감시 등등 별별 폭로가 다 쏟아져나오는 지금은 겨우 한 가지 아이디어로 정리가 된다. “레진이 작가들을 작가가 아니라 이를테면 ‘나가요 아가씨’ 따위로 보고 있는 거라면?”

레진의 없다시피한 작가관리와 양아치 같은 영업짓거리를, 포주와 성노동자의 구도에 집어넣고 도식화해 보면 썩 말이 된다. “쉽고 간단한 일 돈많이 벌고싶은 분들 환영 숙식제공 정부공인기업” 따위 아주 그럴듯한 문구로 순진한 사람들 홀려서, 소속을 시키고, 야한 것 야한 짓을 원하는 자들에게 그들을 쉴새없이 내보내 고객 만족을 시키고 코인을 받아낸다. 그러고는, 당신 거두어서 일감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라며 그 수입을 7대 3으로 갈라 그 7을 얻어먹고 산다. 물론 이게 작가님들에게도 모욕적인 수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보시라. 정말로, 한희성의 사고방식이 이것과 아주 다를까?

당신이 그의 밑에 있는 작가인 한, 애초에 그는 당신의 “작업”과 근무환경에 아무 관심이 없다. 한희성 입장에서는 당신이 고객들에게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장소로 나가서 코인을 환전받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나간 자리에서 휴재공지가 웬말이냐고 욕지거리를 듣든, 최고의 작가님이라고 상찬받으며 그 작업을 도촬당해 불법사이트에 뿌려지든 그건 한희성 입장에서는 근본 자기 알 바가 아니다. 몸이 힘들어서 도저히 못 나가겠다는 당신의 읍소에도 그가 꿈쩍할 이유는 없다. 알아서 나아서 계속하든지 혼자 망가지든지 할 일이다. 왜? 꼭 당신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이 일 하겠다는 다른 사람들 많아요!”

이게 그냥 일개 ‘일못’의 덜렁이 짓거리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텐데, 폭로되는 정황들이 소름이 돋는다. 503정부 시절 그 누구도 우수하지 말았어야 할 창조경제의 우수 사례로 자신을 적극 노출시킨 일이며 최근에 레진코믹스가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돈을 발랐다는 폭로에 와서는, 레진의 포주짓거리는 거의 확신범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양아치라면, 내 사업의 본질이 이쁜 여자애들 내다팔아서 화대 받아먹고 사는 것이라면 나로서도 박근혜 같은 어리숙한 정권이 들어섰을 때 잽싸게 감투를 사둘 것이다. 그리고 그 쪽팔림을 감추기 위해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필사적으로 술을 살 것이다. 나라도 그럴 것 같은데, 한희성처럼 속 다 보이는 기둥서방이야 제깐에 생존 전략이랍시고 달리 무슨 약을 더 쳤겠는가?

레진코믹스 사태에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이 상도덕을 어겼다거나 원고 단가, 수익 배분률, 편집자 의무이행 등의 계약상 세부 쟁점이 있다거나 하는 데서 얘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사안의 본질은 윤리에 있고 한희성이라는 대표자의 의식 그 자체에 있다. 결코 그렇게 취급되지 말아야 할 웹툰이라는 업태와 그 노동자들을, 확신하건대, 한희성은 무슨 성매매업소 취급하듯 취급한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노동윤리의 유린이고, 완전한 인간 배반이며, 순전한 사악이고 용납할 수 없는 추잡이다. 레진코믹스 사태를 정말 해결하려면 법제화를 통한 작가들의 노동환경 개선이 최고 급선무지만, 그 다음에는 정말로 레진 한희성의 모가지와 좆을 잘라야 한다.

오랫동안 꾸준히 포주 짓거리로 제 벌 돈 다 벌며 수많은 사람들 눈에 피눈물 맺히운 이 후릴 놈의 패륜아 새끼를 포함해 이후 그 누구도, 콘텐츠 바닥에서 이런 양아치 짓거리를 꿈도 못 꾸게 해 줘야만 비로소 이 얘기는 끝이 난다. 레진씨, 불만이 있으시거든 나도 좀 고소하오. 그러면 나는 순순히 벌금형을 받는 대신 법정에서 당신을 이보다 더 공개적으로 모욕줄 생각이다. 아니면 이제라도 제발 작가님들에 대한 무례를 멈추고 모든 책임을 지고 고자가 되시오. 그리고 그 허섭스레기 같은 앞잡이 레바는 당장 내치든지 읭읭이 따위 날로 처먹는 3류 개그 만화로 당신 사업의 양아치스러움을 성실히 덮는 짓거리를 속히 중단시켜 주시라.


PS. 내친김에 한 명만 더 저격하고 가자. 권정혁 씨? 당신이 구루는 무슨 얼어죽을 구루여? 포주 새끼 밑에서 시키는 대로 작가님들 실어나르는 봉고차 구루마 운전수지. 먹을 나이 다 먹은 남자로서의 부끄러움과 개발자로서의 최소한의 의협심이 아직 있다면 제발 그 한희성의 좆을 가위로 자르고 레진 깃헙을 sudo로 지우고 거기서 나와 주시오. 그것이 야동블로거의 후장과 박근혜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닌 그 과거를 손 터는 유일한 길이다.

PS2. 레진에서 유일하게 챙겨보던 앙영 작가님이 정말 절묘한 시점에 탈레진에 성공하신 것이 새삼 생각나면서 다행스럽달까 왠지 뒷맛이 씁쓸하달까 그렇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1. 물론 여기서 안는다는 것은 성교한다는 의미의 완곡어이다. 좀더 어려운 한자일 줄 알았는데 이것이었구나 하는 허탈감이 상당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

딱히 정리는 안된 잡감들. 쓰(려)고 보니 순 꼰대소리인 부분 ㅇㅈ합니다.

현재 이 나라의 청년 세대에게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관념은 아주 만연하고 광범위하다. 공감을 사기 쉬워서 콘텐츠 제작이나 칼럼, 기사 작성에 많이들 이용했고 나도 그랬다. 심지어 “헬조선”의 지옥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핵심 키워드로서 청년 사회 붕괴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너도나도 아주 즐겁게 이생망 이야기를 했다. 그런 서사의 생산과 소비는 과연 유효하고 유익하며 유의미할 것이라 믿었다.

재수생과 반수 이야기 - Sepia☂

그러나 이런 만화가 디씨에서 나와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형국이 되고 나면 이제 ‘이번 생이 망했다’는 썰과 탄식은 오히려 하나의 장르, 좀 나쁘게 말하면 하나의 타령조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핵심은, 우리의 삶이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기록해 노출하고 묘사하는 일의 사회적 효용이 과연 그렇게 긍정적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서사의 생산 양상은 흡사 386, 486들이 송강호와 황정민을 앞세워서 그들의 젊은 날을 스크린으로 보상 및 상찬받고 싶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동일한 점은 다들 모르지 않는 특정 세대의 목격담이며 경험담, 그들이 특정적으로 공유하는 정서와 사상을 굳이 예술 장르의 형태를 빌어 전시한다는 것이고, 차이가 있다면 ‘넥타이 부대’들은 그래도 뭔가 해봤다(해본다)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데 비해 ‘청년들’은 결말부를 증발 내지 페이드 아웃시켜 버린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는 확실히 그 세대가 내다보았던 미래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386, 486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주인 의식이 충만했다면 그 직후 세대는 바로 그들, 삼촌 외숙부 할아버지뻘들에게서 “참교육을 시전”당한 입장이라 이렇다할 미래관 자체가 각별히 없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시궁창으로서의 현재, 그래도 한때는 퍽 멋모르게 즐거웠던 과거, 그리고 “이번 생은 분명 망했다”라는 대책 없고 확고부동한 결론뿐이다.

그런데 이 결론에 아무런 다음 스텝이나 돌파, 타개의 수가 전혀 없다 보니, 이 세대는 지금 이 결론의 무한 소급과 재생산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 만화가 그렇다. 현재 저 만화는 “공부 자극 확시켜주는 만화”로 홍보되어 유포되고 있는데, 여기서 아주 독특한 생산-유통-소비 행태가 관찰된다. 만화 줄거리 자체는 ‘별 노력 없이 그냥 가는 대로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인데, 이를 유통하는 측은 공부라는 노력이 없었을 때 이렇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아마 동시에 소비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디테일 오진다”라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거로서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주로 같은 세대인 이 만화의 소비자들은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극화된 주인공을 욕하는 것—그리고 작품이 원하는 대로 그 감상에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을 주된 감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생망이라는 장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해도 좋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이것은 장르 예술의 형식이고 소비 패턴이다. 그 장르에만 나오는 요소들, 그 장르가 천착하는 정서와 논리 구조의 세팅, 그 장르에서 응당 받아야 할 감상과 교훈 등이 정형화될수록 그것은 더욱 확실한 장르가 된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 특정한 느낌과 생각이 반복적으로 공고해지는 것을, 이 만화를 포함한 꽤 많은 매체와 콘텐츠에서 점점 목격하고 있다.

문제는, 이생망이라는 장르가 주는 감상이 퇴폐미보다는 퇴폐 그 자체에 더 가까우며, 이 장르에 세팅되어 있는 가치와 관점과 관념 체계가 다분히 퇴행적이랄까 후진적이라는 데 있다. 퇴폐미는 적어도 엄숙주의에 대해서는 반성을 촉구하는 데 비해 퇴폐 자체는 어떤 것도 반성하지 않는다(오히려 그런 것 따위 반성하지 않아도 좋다는 전제가 다분한데, 특히 이 만화의 결말부가 어떤 장면으로의 이행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압축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너(나)는 이마만큼 쓰레기 새끼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도 않냐” 같은 말들은 정말로 “공부 자극”을 시켜준다기보다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일으켜 그냥 자기의 ‘쓰레기 같음’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정말 그러냐는 얘기는 묻지 마시라 그냥 이것 다 내 근거 없는 잡감이므로.

이 장르, 현시창 이생망 장르에 가장 가까운 역사상 유사 사례는 신파극이라고 보여진다. ‘불쌍한 새아가, 못된 시어머니’ 등으로 촌스럽게 정형화된 비극들은 분명 특정 세대 특정 집단에게는 지극히 유용하였으되 지금은 심지어 공중파 아침 드라마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장르화된 신파극을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간단하게도, 우리가 정말로 그런 세상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학의 미학으로 점철했던 신파극이 한물 갔듯이, 아주 정교하고 정당하며 말리기 어렵고 모두에게 쉽게 전파되는 자조의 미학으로서의 이생망 역시 적절한 시점에 종말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다만 이 장르가 한 세대의 뇌리에 어떤 정서를 얼마나 각인할 것인가가 우려스럽다. 실로 우리는 신파극이 낳은 손녀뻘 장르, 막장 드라마를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론은… 장르로서의 이생망, 장르로서의 현시창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장르는 다분히 자기파괴적이랄까 지속 불가능하달까 바람직하지 않달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별로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거니와 자꾸 되풀이할 소리가 못된다. 할 거면 어떤 타개, 돌파, 최소한의 확실한 골계미나 퇴폐미를 확보하고 가야 한다. 이런 장르, 현재 청년 세대가 자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표현상의 장르화를 이제는 덮어놓고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의 이번 생은 확실히 망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망했는지까지만을 거듭 되풀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일이 과연 어떤 예술적 역사적 공헌을 할 것인가 그런게 있긴 할까 하면 그건 의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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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텍스트

2017. 1. 10. 21:49

최근 읽고 있는 텍스트는 위키문헌에 올라와 있는 각종 연설과 선언, 문학 작품들이다. 위키인용 랜덤도 가끔 돌리고 있다. 한국어 위키인용집은 좀 빈약해서… ㅋ 그리고 팟캐스트로 KBS 라디오 시사고전을 틈틈이 조금씩 듣고 있다.

사실 알은 지는 3년쯤 됐는데 중간중간 구독을 쉴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건 요즘 꾸준히 들을 계기가 있어 다시 듣고 있고, 또 뭐 있더라… 아 그래, <아수라>, <라라랜드>, <너의 이름은.>, <아가씨>처럼 모두가 다 넋놓고 텍스트로 읽고 있는 작품들은 가급적 안 읽을 작정이다.



여기에는 뭐 우열의 차원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이냐 부차적인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위키문헌 랜덤을 돌리다 보면 원초적인 무엇들과 마주치곤 한다. 김명순이라는 역사상의 여성주의자를 만나기도 하고, 환단고기 본문을 읽게 되기도 하고,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의 기자회견문이나 박근혜의 개헌 제안 국회 연설 원문을 접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분명 오늘날 숱한 트윗과 카드뉴스와 소리 소문으로 가공 각색되어 전해지는 것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원문을 내가 직접 정독한 적은 없지 싶어서, 전혀 새롭고 경이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라디오 시사고전도 마찬가지다. 3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편이고, 그걸 대다수 청취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좀 안 맞는 예시나 대수롭지 않은 군말들도 왕왕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는 한 가지 원칙, 동양 고전 속의 원래 한문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새겨 읽고 뜻을 푸는 것만으로도 이 기획은 충분히 훌륭한 데가 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불학자는 수존이나 행시주육이라” 같은 문자를 쓰고 산다.


방금 잠깐 밝혔지만, 요즘은 모든 텍스트가 아무 컨텍스트에 집어넣어도 쭉쭉 흡수되도록 굉장히 잘 커팅되고 소화되고 표백되어 다른 뭔가의 재료로만 쓰이고 있다. 흡사 식자재 가공육과 같다고나 할까. 요즘 시절에 좋은 제작자,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란 바로 이 식자재 가공육에 무슨 양념을 치고 어떤 조리법으로 끓여서 어느 국물에 담가 내놓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걸 잘 한 것이 그 무슨 영화니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것들인 모양이다.


마침 우연찮게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역시 이르기를 <너의 이름은.>을 짓기 꽤 오래전에 한동안 일본 고전 문학을 탐독하면서 서로의 몸이 바뀌는 설정을 접할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고전 문학은 바로 그 당대 시절의 일본 대중에게 <너의 이름은.>만큼의 감동을 주던 무엇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요즘 사람들이 굉장한 영화라고 칭송하고 있는 작품들이 다들 이런 식이다. 고전 텍스트라는 이름의 몇 가지 식재료를 가장 현대적으로 버무린, 어쩌면 그뿐일 수도 있는 결과들.


세상이 비인간적이기 짝이 없어져서, 우리 중 대다수는 2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할 시간이 영화 볼 때 말고는 없는 지경에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라랜드와 너의 이름은.에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대 해석을 수행한다는 감이 있다. 사실 그 패러디 포스터들은 벌써부터 질리고 언론 보도가 나가는 시점에서는 이미 식상하다는 감이 있다. 사람들의 일반 교양 수준이 지금보다 책 한 권 정도만 더 높았더라면 이 영화들은 그냥 잘 만든 영화, 논술용 영화 정도로 적당하게 언급되고 지나갔을 것들인데, 참, 싶다.


그래서 일부러 안 볼 생각이다. 사실은, 다들 하도 떠들어서 이젠 1도 보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추측이 된다. <아수라>는 그냥 누가 착하네 나쁘네를 설명할 것 없이 내 눈에 거슬리는 새끼는 다 조져버린다는 이야기일 테고, <라라랜드>는 현실적이기만 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완전한 삶을 누리는 촌각에 대한 환상일 테고, 등등 말이다. 썩 틀리지 않지 않은가? 이렇게 잘 응용되고 가공 조리되어 무슨 맛일지 대충 짐작이 되면, 안 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는데 결국 요약하자면 난 응용 제작된 상업 콘텐츠들보다는 좀더 원초적인 텍스트들을 보려고 한다. 요즘 그게 내 취향이기도 하고, 그게 불편한 팝업을 두어 개 줄이는 원초적인 방법일 거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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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여기에 덧붙이는 글.


  1. 세상에 CIA보다 많은 것을 아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사실은 예로부터 본질적으로, 지도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것도 개중 가장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축에 드는 데이터. 지도가 정보가 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거기에 정말 시시콜콜하게 누가 어디에서 뭘 한다가 다 적혀 있거나, 아예 전인미답의 땅의 지도이거나.

  2. 사실 이 나라에서는 지도라는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 사고력을 발휘할 일이 퍽 드물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한 동네의 사회지리적 정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 전담 택배 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소리.

  3. 초딩들의 휴대폰으로도 GPS를 잡는 오늘날 “기밀 군사지도”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기밀 지도란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의 핵심 요소인데, 현대 전술에서 정보 비대칭이 뭐 얼마나 큰 변수인가? 핵미사일 개수가 진짜 변수지.

  4.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효자동 뒤에 있다), 국정원이 어디 있는지(헌인릉 뒤에 있다), 서울화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상수동 뒤에 있다)를 지도에서 숲 이미지 합성시켜 누락시키는 게―네이버는 진작부터 그렇게 했고 다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고 있다―과연 군사 안보일까?
    진짜 군사 안보란 건 지구상의 위도-경도 좌표로부터는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그라운드 제로 사방 5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핵심 정보와 지휘권과 전투력이 손망되지 않게끔 하는 일이 군사 안보 아닐까? 다른 예를 들자면,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관광하고 구경하고 다 하지만 국가 기밀은 기밀대로 잘 지켜지는 그런 것이―백악관이 그렇게 하는데―군사 안보가 아닐까?

  5. 지도 유출을 두려워하는 논리의 기저에는 특정 장소에 외부 유입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보안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고 그냥 농성이다. 산성 쌓고 들어가서 문 닫고 스텔스 위장막 쫙 펴다 놓고 그저 버티는 복지부동 말이다. 지도가 단지 데이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마인드셋이 정립돼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그 점이 우스울 따름이다.

  6. 그나마 오늘날 지도 데이터는 민간이 상업용으로 만드는 것이 태반이다. 그 지도에도, 버스 정류장들 이름 다 참고해서, 어느 군부대 앞인지 몇 사단 예비군 훈련장인지 대충 다 써 있다. 이래도 지도가 그렇게나 국가의 안보에 치명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휘통제소 천막에 쪼그리고 앉아 아세테이트지에 소대 마크 중대 마크 그려넣기 바쁜 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를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뭔가?


에효 모르겠다. 바닷가 마을이니까 물 포켓몬 등장 확률 UP 같은 게 데이터에서 정보 만들어내는 발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걸 하겠나. 구더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장은커녕 김치 한 포기도 담그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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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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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임금과 기본소득

급하고 추하게 고도산업화된 나라라서인지 이곳에서의 일〔勤務〕이란 일종의 속죄 내지 고행이 되어 있다. 다들 논다는 것, “숨만 쉬고 사는 것”을 끔찍하게 금기시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공포와 금기시의 이유가 사후적—수입이 없어지거나 생활에 지장이 가거나 파산 상태가 되거나 등등—차원이 아닌 사전적 차원, 즉 사상적/이념적인 차원에 있다는 점이 슬프게 흥미롭다.
모두가 이미 아는 바, “취업 안 하면 어떡해?”의 발화에서 장래 일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의도되지 않는다. “취업을 안 할 수는 없다”라는 무의식적 규범을 스스로에게 돌려 말해 들려주는 것이 의도되어 있을 뿐이다.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냥 넌 그럼 뭐 할 거냐고 묻겠지. 할 거 없으면 취업이나 하라는 식으로.
일해서 돈 벌어 식솔을 부양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긍정적 선택지인 마당에 실존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생활이라는 실존을, 인간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자는 것은 그래서 단순 생떼가 될 수 없다. “수입”으로 대표되는 자유자본시장경제를 포기하는 비용보다는, 그 수입의 최저선을 인격적 수준으로 합의하는 비용에 우리는 더 지불 용의가 있다.

2. 패션좌파와 진보적 정치문화의 의제

패션좌파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결국 소비적 문명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어차피 똑같은 아메리카노 사 마실 바에는, 앉아서 돈백만원 벌자고 꼼지락거리는 구차한 삶보다는 자본권력이며 체게바라며 운운 꿈과 이상을 늘어놓는 것이 더 “쿨”한 것이다. 좌파성이 라이프스타일과 분리 가능한 별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이상, 윤서인이 맨날 두드려패는 헬조선 타령 깨시민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온전히 기성 좌파의 직무방기의 결과다. 세상에 싸울 의제가 몇이고 바꿔야 할 삶의 디테일이 몇인데 그저 닭그네 까는 법만 가르친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진보적 정치는 지금의 삶과 세상에 만족하지 말자고, 좀 덜 불가능하게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정치여야 한다(잠 안 자고 깨어만 있어서 만사에 예민하게 구는 깨시민질이 아니라).
그렇기에 진보적 의제들은 ‘더 나은 세상’, 나와 동네와 법률과 습관과 전통의 변화라는 것을 구체화해 눈앞에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기서 흡연을 금지한다, “병신”이라는 표현을 인격모독으로 간주한다, 청년 1인에게 매월 51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다 같은, “어 그럼 난 뭘 해야 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크 이런거 되게 멋있지않냐 넌 몰랐지? 이게 진보야” 같은 거드름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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