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앓고 있던 증상이 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접하거나 하면, 이상하게 그 본론에 대해서는 생각하기가 힘들고 다른 이상한 잡념과 부가적 정보와 사실들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시장경제의 장단점을 논한 글을 읽으면서 좌우 이념의 허구성에 대해 생각해보질 않나, 'sola'를 보면서 디카 LCD 같은 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를 따지질 않나, 주일 설교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혼자 찬양예배를 구상하질 않나(음, 이건 좀 아니구나. 이건 나쁜 버릇이다.)...
마치 '그거에 대해선 다 알고 있으니까 딴 생각을 좀더 해 보자' 같은 태도인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 참 고약한 증상이다. 그것도 나처럼 나의 껍질을 깨야 하는 인간에게는 그렇다.
며칠 전 처음으로 이 증상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주어진 것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 머리가 그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 나름대로 노력하는 상황인 것이다.
내 지각력과 사고의 폭이 알 수 있는 너머가 있는데, 그걸 얻어들이기엔 가공과 이해와 되새김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난 스스로 어떤 수단이나 단서든지 최대한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생각하자.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잡념에 개의치 말고, 그건 단순히 좀더 열심히 생각하라는 신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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