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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출간 기념회에서 대담을 나누는 김규항 씨

내 사진 폴더에 있는 유일한 그의 사진이다. 사실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분이라 이런 글 쓰기가 좀 그렇다. 뭐 내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을 풀어놓는 자리이니 크게 문제 없겠지?



오늘 나는 네 이념이 뭐냐는 질문에 “초보 좌파”라 답하곤 한다. 초보라 한정하는 건 내가 좌파가 뭔가를 제대로 안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유보다는, 아직은 내가 제대로 된 좌파로 살아갈 가망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좌파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글이나 말로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좌파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인가. 자신 없어 하는 내게, 한 어린 후배가 붙여준 새로운 별명이 위안을 준다. B급 좌파.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출처

나는 평생에 걸쳐 좌파로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전>을 기획하고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다. 대단히 옳은 방법이다. 민중해방신학이 이단으로 찍히기 전까지 그의 이 신앙적 자기성찰 방법론은 유효할 것이고, 더 이상 어린이가 태어나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실제적 실천 방법이 무의미해질 리 없기 때문이다. 2000년에 썼다는 글은 11년 후, 이렇게 하여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해피엔딩을 맺는다.

그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마치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귀찮고 싫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사교육을 받든 안 받든 중요한 건 어린이 본인의 행복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안 되든 진짜 싸움은 자본과의 싸움이다. 너무나 옳고 지극히 바른 말이기 때문에, 마치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는 말씀을 읽는 것과 같이, 싫지만 계속하여 들어야 하는 말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동어반복은, 현재까지는 허용치 수준이다.

그래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는 그의 두 자녀다. 아마도 일류대학에 들어가거나 아주 처절한 삶을 살 것이다. 적어도 평범한 삶은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다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분석하고 비판하고 한마디 하겠지. 김건처럼 산다는 게 결국에는 쁘띠부르조아지적 자기기만의 결과가 아니냐, 김규항 딸 김단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라는 거냐, 그렇게 못할 거 뭐 있느냐, 솔직히 김규항도 배신자라 해야 하지 않느냐 등등. 그때 김규항 당신은 과연 뭐라고 말할까. 나는 그게 가장 궁금하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의 그의 변명 내지 입장을 들어 봐야 그의 속마음이 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쓰기는 써도 사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 첫째 그가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이념투쟁의 최전방에 있어 줘서 안심이 되고, 둘째 시시콜콜한 걸 안 좋아하는 내게 그런 거 안 따져도 된다고 말해 줘서 좋고, 셋째 어쨌든 일깨워주는 바가 있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저 사진을 촬영하던 날 건국대에서 열린 괴짜사회학 출간 기념 대담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잘 멋을 내서 굉장히 쿨해 보였고, 한 칸씩 띄어 앉았고, 출입구 앞에서 고래가그랬어와 레프트21이 좌판을 차렸었고, 사람들은 내가 카메라를 꺼내기도 전에 그들을 촬영하기 바빴다. 아무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오고간 대담과 질답은 책의 내용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때 뭔가 느낌이 왔던 것 같다. 이건 아니라고. 아무리 대단한 책이 나오고 아무리 엄청난 주장이 나오더라도 다 이런 식으로 소비될 것 같다는 느낌, 그때 설명하지 못했던 느낌을 설명한다면 아마 이렇게 설명될 만한, 그런 실망감에 가까운 직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래삼촌이 돼야겠다. 그래야 이런 소리를 할 구실이 생기지... 일단 전도여행 다녀와서 명성교회 알바에 말뚝을 박아야겠다. 나도 결국 준정규직 자리 하나가 아쉬운 이 땅의 몹쓸 2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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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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