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나온 김에 더 적는데 일단은 위험해질(아니면 내가 곤란해질) 소지가 있어 조금만 적겠다. 이 아이디어는 고3때 처음 나왔다.
내 생각에 세상 모든 언어는 세 갈래로 구분된다. 칸트는 인간의 사고범주를 열둘로 나누면서 '시공간의 틀 그리고 이 사고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오성의 밖에 있다'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가 제시한 갈래는 나름대로 예외 없이 잘 구분되게 만들어 놓았으므로 떳떳하다. 반면 이하의 구분은 좀 불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은 적겠다. 제1종은 '소통언어'다. 한국어, 수화, 모스 부호 등이 이에 들어간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끼리 유의미한 의사, 정보, 감정 등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문법의 틀을 지닌 수단과 체계이다. 우리가 가장 흔히 다루는 언어로서,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엄청난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제2종은 '논리언어'다. C++, html 태그, 수식 등을 꼽을 수 있다. 객체와 객체 간의 상관관계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다분히 수학적인 언어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범위는 입출력되는 '객체'로 한정되어 있지만, 그 객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한 융통성을 띠고 있다. 제3종은 '분석언어'다. 악보, 설계도, 바코드 등이 이에 속한다. 소통언어로 즉각 표현, 전달, 가공되기 어려운 내용을 다루기 위해 내용(사고) 자체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표현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것들이 무슨 언어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악보(혹 설계도)를 읽는다는 말을 흔히 하고, 바코드 또한 기계가 스캔하여 점과 선으로 된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분석언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문제되는 것은,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분석'언어'고 어디까지가 단순한 '매개체' 혹은 '정보'인가 하는 난점이다. 방금 전 예를 적을 때 '이미지 파일'을 넣을까 하다가 넣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파일, 나아가 모든 전자'정보'를 다 언어라고 말해버리는 심각한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위의 3종 언어를 두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사실은 바코드도 빼야 옳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려우므로 지금의 내겐 벅찬 문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언어의 기저에 깔려 있는 언어, 인간으로 하여금 언어를 언어로 받아들이고 또 쓰게 하는 제0종의 언어를 제안하고 싶다. 물론 그런 게 있긴 한지조차 알 수 없지만. 만약 이 언어가 실제 있다는 것을 인간이 인지할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다면, 모든 언어의 근본적 물음들이 풀릴지도 모른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신비한 '생각의 영감'에 대해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상상해 본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나는 여기서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 다른 이름이 기존에 있을 것이다.
-08.07.05 수정: Language Acquisition Device라는 개념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내가 뭐나 아는 것처럼 장황하게 적어놓은 것들도 상아탑에선 우스운 기초이론으로 보일 것이다. 사실 나는 그들이 이것에 대해 뭐라고 이름을 붙였고 무슨 말을 하는지를 좀 배우고 싶다. 설마 보잘것없는 대학교 새내기의 거친 아이디어가 지금까지의 위대한 학술연구 속에 한 번도 없었겠는가. 다만 내가 이런 걸 생각하고 있고, 이런 게 도대체 정확히 뭔지를 좀 알고 싶다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언어 쪽에서 학문 높으신 분 있으시면 가르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