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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얼마 전에 오리지널이 생산되는 순환주기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일단 이것이 요즘에야 나타난 현상인지 아니면 적당한 조건이 맞으면 응당 일어나게 되어 있는 바 역사적으로 그다지 주목할 특징이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으니 치워놓고라도, 최근 제게는 그나마 오리지널이라는 것이 생산이 되고 있긴 하느냐는 물음이 더욱 절실하게 밀려옵니다.

요즘 찌라시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종이 한 장짜리입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길거리에 뿌리는 무료 찌라시입니다. 지난 7월 28일에 공식 트위터를 개설할 때만 하더라도 이게 실제로 진행이 되겠느냐는 의심이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어젯밤에 사십만 원이 넘는 프린터를 주문하는 지경에 이르러, 정말로 10월 8일이면 창간호를 보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읽고 싶으시다면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든지 바로그트위터에 고지해 드리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가서 길거리를 찾아보시면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리저리 원고 준비하고 디자인 뽑고 돈 문제를 맞추는 일련의 과정을 석 달 넘게 거치면서 느끼는 것은,

...이까짓 찌라시 하나 만드는 것도 무진장한 생산활동이라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애시당초 무슨 '생산'이 없다는 기분입니다.
요즘 뭘 만들거나 그리거나 연주하거나 하는 일이 잘 있습니까? 그나마 웹툰도 포털이라는 기획사에 소속된 만화가들이 재미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지경이죠. 누가 돈을 벌고 있긴 한가요? 제가 보기엔 외환차익과 주가 변동과 부동산 가격차이가 나머지를 견인하는 지경입니다. 이론과 사상과 운동은 무슨 생산이 있습니까? 요즘엔 이상하게도 과거에 활동하고 행동했던 분들이나 최근 등장한 분들이나 죄다 언변으로 결과(output)를 내려 합니다. 뭔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세상이 기울어가고 있습니다. 결과물로 말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작품보다 리뷰가 흥성하고 먹을 것 없는 잔치가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자기 트윗을 하는 사람보다 RT가 더 많은 지경입니다. 생산의 소멸이 드러나는 가장 극명한 사례가 인터넷 컨텐츠입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개인홈페이지의 '자작' 작품들이 흥성하던 시절과 UCC 개념(그 자체가 웃기는 짬뽕이지만요)이 등장한 2~3년 전까지의 시기 그리고 그 이후의 현대를 비교해 보자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스마트라는 개념의 보급 때문이며 그래서 강력하게 타도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전에 우리는 본디 스마트하지 않다고 적었는데(이 글은 아마도 그 첫 문제의식의 개정증보판이 될 모양입니다) 과연 이 생각은 가면 갈수록 공고해지고 또렷해집니다. 아닌게아니라 UCC에서나마 보이던 미친 크리에이티브가 무슨 공모전 대상 작품으로 영합(?)하던 시절부터 좀 위험해 보이더니, 스마트라는 시대정신이 보급되면서는 완전히 영리해지기만 했을 뿐 그래서 꽝 하고 터지는 '오리지널의 무지막지함(preposterousness of the original)'이 영영 희미해져 갑니다. 다들 받아적고 RT하고 지켜보고 댓글 달고 키보드 배틀을 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래 그 모든 걸 하기 위한 재료로서의 오리지널, 개시(initiation)는 실종되었다는 겁니다. 그건 멍청하니까. superrational하기에 irrational한 것으로 보일까봐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책임지고 내가 발언하고 내가 드러나는 건 싫은, 그냥 똑똑하지만 이름 없고 요령 있게 살아가는 차도녀로 있고 싶으니까. 스마트. 괜히 힘들여 뭔가를 고생스럽게 만들어내는 생산이라는 것을 내려다보는 되도 않는 거드름.
그나마 자기 발로, 자기 입으로, 자기 몸으로 뭔가를 하게 되는 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긍정되는 유일한 생산은 사회참여가 아닌가 합니다. 70년대로부터 우리 선배들이 물려 준 팔뚝질의 유산은 참으로 스스로 강건한 것이어서, 유행에 맞게 파스텔톤의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생산다운 생산의 하나로 명맥을 잇고 있어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김기조 씨가 기억하는 8,90년대 문화의 역설적 풍요는 상속되지 못했습니다. 참여는 없어지고 생산은 증발하여 오늘날 과연 모든 것은 신기루 경제 위에서 유통되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그찌라시의 팔레스타인(직함은 주기적으로 바뀝니다.)을 맡아 지금껏 기획을 총괄하고 헛소리를 던지고 원고를 쓰면서는, 바로 이 세태에 반항하듯이 선지자적으로 찌라시를 뿌려 대려고 합니다. 더 이상 2쿨짜리 애니를 볼 수 없고 만화 원고 그리기도 힘드니까 소설로 적당히 적어 내는 등 모든 것이 경량화하는 시절입니다만, 적어도 이 찌라시는 그런 식으로 싸잡아 욕하기는 어려운, 엄청난 밀도와 내공으로 여러분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적어도 제가 만들고 제가 쓰고 제가 뿌리는 불온 선전물에서는, 스마트하기만 한 모든 교양들, 불펌과 단순 패러디에 불과한 내용 없는 아름다움 그리고 모델하우스 같은 내면적 자세는 타도하려 합니다. 제가 못 봐주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걸 보여주는 잡지는 넘치도록 있어요, 조선일보가 진중문고로 집어넣는 TOPclass부터 맥심에 이르기까지.

기대해 주세요. 뭔가 보여드리겠읍니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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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메모형 개괄보고. 준거를 대자면 너무 방대해지는 바람에 일단 통찰된 핵심 내용만 씁니다. 캐릭터페어는 가면서도 SICAF는 안 갔었는데, 여태 느껴왔던 것이 이번에 정리가 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 최근 문화산업계의 추세를 보면, 점차 오리지널(원작, 원형, 원조)을 생산해내는 순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생산 수단과 생산양식은 더욱 간편화되고 있으며, 그래서 상품(작품)의 치밀성, 예술성, 내적 완결성 등의 완성도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기대수명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반면, 오리지널을 유통하는 마케팅은 실물 경제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칭적으로  팽창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윤 추구와 규모의 경제의 차원에서 오리지널의 생산 주기를 단축하고 있다.
# 오리지널 자체가 빠른 주기로 속속 생산되는 현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과거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산업 시장 자체가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의의 마지막은 항상 오리지널의 더 많은 공급과 생산, 이를 뒷받침할 제반 여건과 풍토와 제도와 분위기 조성을 요구하고 끝났다.
# 이는 비단 문화산업뿐 아니라 지식정보 경제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사회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오랜 시간 세련/정제/검토/함축하는 과정이 압축/생략/간편화된, 결과적으로 감각적이고 극단적이며 다소 개념형에 가깝고 일회적이며 소모성인' 떡밥들이 각처에서 투척되는데 이것이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에 있다.
# 이는 내용의 빈곤을 야기하며, 현대의 창조 능력의 빈곤을 반증하는 것 외의 역사적 성과를 이루기 어렵게 만들고, 무엇보다 '창조/창작/참여/기타행위에 의한 발언/상투성극복/발견/표현/가능성제시' 등 오리지널 생산에서 발현되는 인도주의적, 고차원적 목적과 성과를 단순한 생산/유통/소비/폐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요컨대 창작이란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무슨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그 창작이 철저히 계산된 기획과 R&D 아래 진행되거나 곧 질려(혹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게 되는 그 '반감기'가, 요즘 들어 단축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단축되어, 아무 재미도 없는 (그래서 상품 액면상으로는 더욱더 무조건 재미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듯한) 창조가 양산되리라는 것이다.
# 두 가지 방향의 해결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오리지널의 '물리적' 총량 공급 확장이 아닌, 오히려 소수의 오리지널이라 할지라도 그 '화학적' 총량, 내적 충만을 더욱 강조해서 생산케 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생산되는 떡밥들로부터 일정량 이상의 '칼로리'를 먹어야만 만족하는 '고등 오타쿠'를 대거 양산하여 오리지널들의 질을 상향 평준화하고 생산자들을 재삼 자극할 만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현 실태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아주 과장해서 비유하면, 지금 생산되고 있는 문화 소비재들은 속빈 강정과 같고, 그 바삭거리는 맛에만 몰두해 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어린이 같은 오타쿠들만이 자꾸 생겨나고 있으며, 그 어린이들을 보는 어른들은 뭔가 먹을 것도 많이 생겼고 많이 먹고 있기도 하니까 앞으로 이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하겠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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