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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ernardwerber.com/


처음 개미를 읽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절대로 지하에 내려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나를 이 책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었고, 성냥개비 여섯 개로 삼각형 네 개 드립은 처음으로 내게 책의 결론을 엿보기 위해 읽지도 않은 지면을 훑는 못된 짓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명 왕성하고, 많이 배웠고, 열심히 쓰고, 낭만 있는 작가다. 게다가 우리나라엔 그의 팬이자 전속 번역가라 할 만한 사람까지 있고 보면, 그가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는 데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베르베르를 읽고 있으면 세계는 매우 신비스럽고 깊어지고 지적이고 신적인 세상이 된다. 그는 절대자/조화옹과 그에 대한 이해에서 파생되는 동물(세계/우주)과 인간의 관계, 어떤 단순한 가정의 극단적인 시뮬레이션, 죽음과 삶, 범신론/자연주의, 인간 철학의 허무성 등등을 계속해서 이리 뒤섞고 저리 뒤섞으며 과학적 사실과 상상이 우리의 세계관과 생활양식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보이지 않는 얕은 선입견들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가를 목도하게 만든다. 뇌만 남은 인간이 뇌파를 받아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에 의탁하여 살다 마침내 한 천재 체스 선수에게 약간의 쾌감을 물리적으로 제공하여 복상살한다는 이야기는, 혹은 17이란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평생을 바친 수도자가 뿔 달린 동물처럼 생긴 667700996이나 그 이상의 수도 얼마든지 있음을 너무 급작스럽게 알아버린 바람에 반군에 합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면 요한계시록의 14만 4천이라는 천국 백성의 수를 그대로 인용하여 거대한 우주선에 태우다가도 '근데 인간이라는 유해종이 이 세계에서 번식할 이유가 있나' 하는 물음을 주고받는 이야기는, 우리를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경탄하게 한다. 역시 베르베르는 상상력이 대단해, 하고.



문제는 그게 다라는 데 있다.
그의 작품구도부터, 장편의 경우, 한 천재의 의문의 죽음에서 대체로 시작되거니와 그 과정을 쫓아가는 주인공이 있고 그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작가의 백과사전이 인용되고, 다시 무의미해 보이는 서술이 이어지다가 이 모든 것이 다시 겹친다. 그리고 나서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다가 어정쩡하게 신기한 이야기로 라스트 신이 그려진다.
게다가 그의 주제의식도 대체로 상이하다. <뇌>를 읽은 뒤 <나무>의 수록작 <완전한 은둔자>를 읽어 보면, 장 루이 마르탱은 귀스타브가 되었는가 하는 착각이 일고, <나무>의 수록작 <어린 신들의 세계>는 결국 <신>의 선행방송이 아니냐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드디어 지금껏 영 다뤄본 적이 없던 '시간과 과거'라는 주제를 생각한 모양인데, 그나마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그는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평밖에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효용성, 문학성의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는데, 그는 그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렇게도 얘기해 보고 저렇게도 얘기해 보는 데서 그만 그치고 있고, 그래서 재미있는 과학적 상상 이상의 도전적인 가치 제시나 기존의 자신과 세계를 해체 재구성해 보는 등의 쇄신 없이, 마치 자판으로 사고실험을 하고 있을 뿐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의 문학이 당대에 재미있었다는 이유로 많이 팔릴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세기를 넘어 두고두고 기억되지는 못하리라는 것은 아무래도 점점 기정사실이 되어간다(그의 작품 중 하나를 대표작으로 골라 그것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는 있겠다)―본받는 문제는 물론이고.


이제 그에 대한 평가에서 거품을 뺄 때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그야말로 과학소설계의 댄 브라운이다. 댄 브라운이 '음모론 소설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군림하고 있듯이 그렇다. 내가 중학생 때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여 그의 작품이 개미굴처럼 광대하고 웅장하고 그래서 더욱 끝없을 줄 알았는데, 음, 이제 군바리를 넘어 복학생이 될 준비를 하는 지금, 점점 자기표절을 보여주고 있는 그에 대해서는, 다시 재평가를 실시해서 클래스를 낮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느 서적가판대에서나 그를 볼 수 있다. 싫으면 말고... 난 여러분께 그냥 고민하지 말고 최신간을 사서 읽으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어쨌든 한두 달 정도 심심풀이로는 그만한 작가가 또 없다.



P.s 그를 전담하다시피하는 이세욱 님께 경의를 표한다. 이분 때문에 번역이라는 짓을 우러러보게 되었고 급기야 좋은 자막 잘 봤다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는 내공까지 스스로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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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 요즘 1번 갈래로 넣어도 될 것을 4번으로 넣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되겠다.
  • 최근 내가 굉장히 협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위축인가, 집안에만 있다 보니 당연한 건가. 사회로 나가면 또 다르겠지. 그래서 4번 갈래를 더 고르게 된다.
  • 오른편에 링크를 대거 추가했다.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일단 내 즐겨찾기에 없지만 자주 들어가는, 아니면 즐겨찾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주 들어가봐야 하는 링크를 넣어봤다.
  • 난 웬만하면 새창 띄우는 링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넘어갈 땐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 부모창을 남겨놓는 건 꼭 바짓가랑이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오른편 링크모음은 설정을 하다 보니 새창이 뜨는 경우가 있다. 일괄 수정봐야지.
  • 엄니께서 근 몇 주 동안 내가 부쩍 어른스러워졌다고 하신다. 그럴까. 뭐든지 갑자기 크는 건 이상하다고 여겨 온 나에게 있어선 좀 계면쩍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 너 중학교 초등학교 땐 얼마나 건방졌는줄 아냐? 마치 저가 다 안다는 것처럼... 여전히 찔린다. 어무니, 멀었습니다.
  • 어제부터 이틀에 걸쳐서 두 가지로 고민했다. '五月晴れ/五月バレ'와 '焼け太り'를 각각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그것이었다.
    전자는 심히 오래전부터 고민해 온 말장난으로, 정발본 역자 설은미 씨 역으로는 '5월 날씨/5월 들통'이었다. 어젯밤쯤에 결국 '5월 밝음/5월 발각'으로 결정했다. 후자는 단행본 10권을 산 날부터 '속편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다'라고 예상한 탓에 '본격적으로' 고민했다. (이것 역시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내내 궁리했지만) 오늘 드디어 우리말 속담사전까지 뒤졌고, '집 태우고 못 줍기'라는 말을 얻어, 누가 뭐라건 이것으로 갈 생각이다.
    사실 가능하기만 했다면 '사랑니(親知らず)'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식 표현을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품에서 어느 정도 문맥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용인을 해주었고, 사랑니에 관한 우리식 표현이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슷한 게 있을 리 만무하므로 그냥 주석을 다는 쪽으로 갔다.
  • 어떨 때 보면 난 너무 미련하다. SiCKO의 우리말 제목을 무엇을 지어줄까를 가지고 한 서너 주는 고민했다. 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몇 없고, 심지어 나도 '앓던이'라는 제목은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전을 찾고, 관련 문서를 찾고, 죽어라고 혼자서 삽질한다.
    절망선생 자막을 하고는 있지만 정말이지 어떨 때 보면, 그냥 나도 휙휙 직역해버리고 나머지는 죄다 텍스트로 밀어넣고, 원래 소재(元ネタ) 따윈 스킵하고서 난 할 거 다 했다고 내밀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런 희한한 고집의 장본인은 아마도 이세욱 씨일 것으로 생각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전담하는 번역가라며, 엄니는 이 사람의 정신이 대단하다고 늘 일러주셨다. 번역 중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땐 심지어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을 정도라고. 그 정도면 미상불 존경이 필요하다. 엄마가 '개미' 3권 세트를 볼 적마다 얘기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번역한 책(덕분에 베르베르의 책은 뭘 읽어도 문체가 같다. 외국도서임을 생각하면 놀랍다)을 읽은 일이 있기에 난 이런 벽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일본어에 '이마이치(今一)'와 '요코즈키(横好き)'라는 표현이 있다. 각각 '약간 모자란 모양'과 '잘 하지도 못하면서(본업도 아니면서) 무척 좋아함'을 의미한다. 이게 딱 나다. 내 창작활동은 이렇다. 항상 '~하다가 말고', '별론데 괜히' 덤빈다. 프로페셔널리즘. '요코즈키'까지는 해결 못하겠고, 일단 뭐가 됐든 '이마이치'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망은 그렇다.
  • 일단 절망선생 정발본 전권 지르기는 완료했지만, 아직 천어씨가 준 제목의 책을 못 샀다. 만화책 살 때 같이 살 걸 그랬다. 뭐, 지금 생각해 보자면 배송은 한국교회 처음이야기 그게 더 빠를 테니 따로 주문해도 나쁘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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