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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근황. 비번은 0691.

2009. 7.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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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7

2009. 7. 12. 01:46

이야기 좀 더 하자. 우리 좀더 사귀자.
(열차 창가 좌석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려고 궁리해 보고 있다.)

왜, 야한 생각이라도 하게?
네?
난 널 안다. 너 지금 나 무시하고 괜히 엄하게 시간 죽이려고 하고 있잖아. 아니면 뭐, 찬양이라도 들을래? 너 찬양 좋아하지?
...
...미안하다,
?
내가 썩 매력있지 않아서...
아뇨, 그 무슨 천만의...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아주라. 난 너를 사랑하는,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고 싶다.
...
...


...매력이 없는 하나님!
대담을 가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놀라움과 창피함과 죄송스러움이다. 사실 참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시므로...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사53:2)
Posted by 엽토군
:
출20: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희를 시험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이며, 너희가 주를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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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http://blog.naver.com/dicebookbug/100064205423

언젠가부터 클럽에 올라온 기도제목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많이 나태해졌는데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감기에 걸렸는데 몸조리 잘하도록" 하는 식의 기도제목으로 포화상태다.

철저히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하나님의 인격이나 의지 따위는 도외시한,
100% 자신의 안락함과 평안함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차라리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우지, 생각대로 이뤄진다는데...

이걸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하나...
여러분, 보채지 말고, 결단합시다.

...네, 그런 기도 안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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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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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6

2009. 3. 16. 17:11
(※이하 전문이 아닌 일부 발췌의 요약)

요새 어떻게 지내?
모르겠어요. 1학년 3월 때랑 비슷하게 일정이 많아요. 바쁘게 지내려면 얼마든지 바쁘게 지낼 수 있는데요, 그러지 않고 있지요.
그럼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때?
에, 신앙생활은... 교회에서고 모교에서고 QT하자고 그래서 QT책 막 사라 그러고 그러는데, 그래서 가방에 지금 매일성경도 넣어놓고 있는데 안 하고 있지요. 봄 캠프를 기다리며? 뭐 그런 거죠.
봄 캠프 기대돼?
뭐랄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부흥회 뭐 그런 거?
그래? 근데 한 번만 확 타오르고 그러기만 하면 슬프잖아.
네? 아,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요즘 어때?
네?
신앙생활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냐고.
...
...
뭐라고 할까... 좀 소원해졌다고 할까, 그래요.
...
...
Posted by 엽토군
:

대담 5

2009. 2. 12. 21:46
(평소 그렇듯이 습관처럼 티스토리 로그인으로 들어가려 한다.)
나도 너 블로그 봐.
…?
나도 매일 너 블로그 본다니까. 카운터는 안 들어가지만.
!!!
Posted by 엽토군
:
모든 착각은 감각적인 기쁨에 집착할 때 나타난다. 영혼들은 이 점에서 참으로 둔감하다. 그들은 무엇을 느껴야지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기 사랑의 미혹에 빠진 결과이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기쁨을 느끼는 한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풍요함 속에서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흥분이 사라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의 기쁨과 상상을 대신 올려놓는다.

찬양시간을 좀더 좋게 해 보려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인가 기타가 없으면 찬양시간을 '때울 수가' 없는 나 자신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가? 그렇다. 그 기쁨은 우리가 알기 쉬운, 우리가 바라는, 우리 입맛에 맞는 기쁨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각주:1]' 나오는 기쁨일 것이다. 그것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내 팔의 힘과 목소리,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각주:2]' 기뻐하는 기쁨일 것이다. 그 때야말로 천국 백성의 기쁨은 천국에 속한 기쁨이 된다. 세상에는 도무지 그런 기쁨이 있지 못하므로.

기타 내려놓고 묵상이나 많이 하다가 군대 가야겠다.
  1. Tony Hopkins의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본문으로]
  2. Brent Chambers의 '나 기뻐하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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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출처

그리스토쿄 하는 백성은 교 안 하는 백성보다 마음이 강하고 용맹이 있어 죽는 것을 두려워 아니하는 의리가 생기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교를 참으로 믿거드면 언제든지 옳고 (중략) 의리 있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봐주시는 것을 믿는 연고요, 설령 옳은 일을 하다가 죽더라도 영혼을 하나님이 영생 불멸하는 복음을 주실 것을 믿는 연고라.
사람마다 죽는 것을 두려워 아니하고 의리와 경계를 밝히려고 하거드면 그 나라는 자연히 부강하고 남에게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라.


백 년 전에는 이렇게 좋게 보였단다...


+ 2016. 8. 20. 추기: 이 칼럼은 독립신문 발간의 실세였던 헐버트 선교사의 영향으로 사실상 전도의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중론이 있다.

Posted by 엽토군
:

선 수행하는 사람들 말로는 화두쯤 될까. 그런 것이 몇 개 있다.

  1.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정해져 있는 노력은, 무엇으로 정당화 혹은 계속될 수 있는가?
  2. 정말 참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 혹 종교는 필요한가?
  3. 현대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은 윤가 수업을 들으면서, 2는 자연인간을 들으면서, 3은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질문.
1은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까뮈의 말을 빌릴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
2는 한번 생각해 봤다. 사실은 일본 선교에 대해 생각하다가 부닥친 질문인데, 그들에게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구원이 필요하다. 요컨대, 그들의 행복은 그들만의 것이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으로 또 보편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는데, 그 매개는 바로 좋은 소식의 전달이라는 것이다. 내가 봐도 어딘가 부족하다.

3에 대해서는 대답하겠다. 현대 기독교는 종교보다 거룩한 신앙으로서 이 세상에서 서 있을 필요가 있다. 요즘 종교계는 개판이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단다.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아니지 싶을 텐데 결국 탈근대 초현대의 유행이 사람의 믿음과 십자가까지도 쥐락펴락한다.
종교는 모든 가르침 위에 신자가 앉아 있다. 종교통합이니 진리가 다르지 않다느니 대단하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오만하다. 자기 성찰과 평범한 도덕, 그리고 거기서 도출되는 보편적 아이디어만 있으면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모든 구원과 모든 완성이 완벽히 가능하다고 하니까. 한마디로 "너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너 알고 있는 대로 설명하고 다니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럴 리 없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이건 단순한 신념이고, 아니, 그냥 착하게 사는 방법의 온갖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교마저 이런 식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적당주의에 기울어서는 안 되겠다.
머릿속으로 성직자를 상상해 보라. 빨리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과연 민중과 함께한다면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있는 혹은 대열의 앞에서 투쟁하는 모습으로 곧장 떠오르는가? 그럴 리 없다. 필시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의 기도 혹은 말없는 봉사를 하고 있었거나, 사람들에게 어질게 웃으며 사려 깊은 한 마디를 해 주고 있을 것이다. 현대의 종교계는 전자를 강력히 요구한다. 대다수의 흐름에 따라오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겠다고 약속된 그리스도인들만은 세상이 부른다고 졸래졸래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일엔 아니오 해야 한다. 그밖의 모든 것이 타협과 불순종과 오만과 음란함에서 나온다.
그러면 여전히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어느 종교에서나 대체로 하지 않나? 내 말이 그 말이다. 그게 바로 종교와 신앙의 차이다. 종교에서는 모두 거의 같은 말을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이 종교란 순전히 인간적으로 봤을 때 옳은 가르침들의 집합이므로. 그러나 신앙의 지경, 신념의 위에 있으며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생각과 조건마저 포기되는 자리, 으로 올라가면 도저히 이 신앙과 저 신앙이 같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보더라도, 모두가 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보다는, 아무도 도저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을 그렇다고 믿는 믿음이 더 대단한 것이다. 당신은 죄로 죽었는가? 예수께서 당신을 속량하기 위해 죽으시고 다시 나셨는가? 그러므로 그분을 구주로 믿음으로 당신도 다시 나는가? 인간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할 때 이것은 한갓 종교인들에게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리가 된다.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가 가져야 할 입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길길이 우기는 것이다. 믿을 수 없어 보이는 것까지도 믿고,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조차 납득한다. 그리고 더욱 위대해진다. 기독교야말로 이것이 가장 확실하게 가능한 신앙이다. 이 확고부동한 구분 전략(?)을 포기하는 순간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시는 것이 된다.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몽학 선생으로 말미암고 말기 때문에.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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