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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노동자 계급

2008.10.05 20:58
대한민국[각주:1]의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고등학교 3학년생까지를 학습노동자 계급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들은 학벌자본주의 사회의 프롤레타리아다. 그들의 노동은 학습이며,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점수와 등급(석차)이다. 그들에게 중간 계급은 그들의 처지를 겪어 안다고 말하는 대학생 및 사회인이고, 그들에게 부르주아 계급은 단연 학교 선생, 과외교사, 입시 학원 등으로 대표되는 '교수자본가'이다.
석차 공급자요 입시의 수요자인 이들은 현재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심각하게 착취당하고 있다. 이들은 NEIS[각주:2]로 감시/통제되는 관리의 대상이요, 출석번호로 이름을 대신하고 성적으로 모범생 여부를 가리는 비인간적 대접을 받고 있으며, 고등학생이 되면 대부분의 학습노동자 계급은 법으로 정해진 1일 8시간 이상의 학습노동을 매일같이 감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학습노동자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온갖 압력, 불평등, 제한, 편견의 시선을 당하고 산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소외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교과내용을 학습하기 위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교과내용을 학습하는 지경이며, 그들에게 있어 점수 및 등급은 자아상 및 자신의 현재 희망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단지 강압된 혹은 필요에 의해 억지로 생산해내고 있는 가치에 불과하다.
학습노동자 계급의 이상적 해방이라 하면, 무엇보다 학습이 학습자를 소외하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전설로 전해 오는 옛날처럼 배우고 싶은 것을 직접 찾아서 배우고, 토론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자기만의 인생 길을 찾아가는 그런 양상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습자-교수자 계급 간 갈등 따위는 전혀 없는, 아니 그런 계급이 사라지고 모두가 교수권과 학습권을 공유하는 일종의 공산 사회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급은 어째서 여태까지 체제를 전복시켜 해방을 얻지 못하고 있는가? 이 계급으로 하여금 허위의식을 갖게 하는 치명적인 특징이 하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해방된다'는 의례성이 그것이다. 요컨대 '너희들만할 때는 다들 겪는 일이다', '조금만 참으면 졸업이다' 등의 선동으로 그들을 납득시키고 체제화하여 이 모든 부조리를 순응케 한다.
그리고 교수 계급이 그들에게 주입하는 또 하나의 허위의식은 그들이 곧 학습노동의 유산자 계급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너희들 대학 보내주려고 하는 일이다'라는 설득은 매우 좋은 서비스처럼 들리며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교육을 바꾸어라'라는 권유는 매우 정중한 당부처럼 들리나, 결국 유산자 계급은 현행 학벌자본주의 자체를 바꿀 의도가 없으며 그러므로 무산자들은 오히려 체제를 잘 역이용하여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면 된다는 영합주의적 발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각주:4]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가치관 주입으로 인해 학습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계급의식을 갖추고 실제적 행동을 일으키지 못한 채 졸업한다.
이 계급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뿐이다. 다만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다만 아이디어의 차원으로 적는다. 수능을 5차례에 걸쳐 보게 하라. 매년 똑같은 압박과 차별을 주고 여전히 성인이 아닌 '학생'으로 대우하면서 계속해서 점수를 생산케 하라. 이렇게 하면 5년은 고사하고 2년이 지나지 않아 체제 전복이 일어나며 혼합형 학벌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거세게 일어나고 나아가 현재 이 나라를 움켜쥐고 있는 학벌자본주의와 그 구조 자체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폭발할 것이며, 이상향도 조금은 이루어질지 모른다.
10/15 - 현실적으로 학습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방안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문학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현재의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을 위해 어른이 쓴 문학이라는 어감이 강하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청소년의 문학으로 만들어, 학습노동자들이 소설을 쓰고, 시를 짓고, 이를 서로 돌려보고, 비평하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사회 인식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발현되고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고교독서평설의 '글쓰기 창고', 아이두넷의 '연필과 지우개', 사전의 형태를 띤 비판서 '대한민국 학교대사전' 등이 있다. 가능하지만 심히 미비하여 적극 추진이 참 어렵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학습노동자 계급은 맑스주의적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가운데 가장 심각한 소외를 겪고 있는 무산자 계급이나, 일정 시간 이후 해방된다는 의례성과 그들도 유산자가 될 수 있다는 허위의식을 선전함으로 인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각하기에 따라 극약처방을 통해 학습이 학습자를 소외하지 않고, 학습자가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점수를 생산하는 이상향에 다소나마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P.s 날더러 '너는 철학이 아니라 사회학일 텐데'라고 말한 모든 어른들에게 미안하다. 그냥 철학 하겠다.
  1. 굳이 대한민국에 한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학습노동자-교수자본가 구도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나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나이스 혹 네이스라 읽으며,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다. 도(道) 단위의 대규모 전산망으로 기존의 학생생활기록부를 대체한 전산관리체제이다. [본문으로]
  3. 쓰다 보니 느끼는 것인데 맑스주의는 대한민국의 현 교육환경을 신기할 정도로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본문으로]
  4. 공부를 강력히 시키는 고등학교일수록 교사가 되겠다는 장래희망이 월등히 많이 집계된다. 유산자 계급으로 영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그들의 판단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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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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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6 00:3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여보세요, 너는 아주 좋은 보는 위치가 있는다!
    많은 감사 아주 재미있는 지점. 나는 너의 웹사이트를 사랑한다!

    는 훼이크고, 맑스 귀신이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 아닐까. 어디에 끼워맞춰도 잘 맞는다는거. 물론 vice versa도 옳을것이고.
    • 2008.10.06 11: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근데 써놓고 보니 상황의 진전이 없다.
  2. 2008.10.07 07:1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 2008.10.15 10:3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논리가 부족한 건 저고요... 위 글은 순전히 각성제의 역할을 하길 바라고 쓴 겁니다. 이미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면 이 글도 그저 또 하나의 비판거리에 불과하죠.
      걱정 말고 지금은 지금에 매진하길
  3. 2008.10.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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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폭탄 트랙백 당한적 있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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