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두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9.17 뜻밖에 발견한 시 두 편

만(萬)년 뒤에도 억(億)년 뒤에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모두는 끝나고
바다와 하늘뿐인
뙤약볕 사막벌의 하얀 뼈의 너
희디 하얀 뼈로 나도 너의 곁에 누워
사랑해, 사랑해,
서로 오래 하늘 두고 맹서해 온 말
그 가슴의 말 되풀이해 파도 소리에 씻으며
영겁을 나란하게
바닷가에 살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 박두진, <신약(新約)>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美)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過剩)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時代)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命令)을

―― 김수영, <서시(序詩)>


이런 명문들을 읽노라면 뿡알이 쪼그라든다. 이정도는 써져야 어디 가서 시나부랭이 쓴다고 깝칠 수 있는거구나.
Posted by 엽토군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99)
0 주니어 PHP 개발자 (6)
1 내 (326)
2 다른 이들의 (252)
3 늘어놓은 (37)
4 생각을 놓은 (71)
5 외치는 (76)
9 도저히 분류못함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