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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4 그냥 있는 거 가지고 만들어 먹자 7

안철수 힐링캠프 출연 관련 트윗들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정리해서 올립니다. 비유로 돼 있으니 이해를 하기 어려우면 주석을 봐 주세요.




사회란 무엇인가? 무릇 사회란 오늘[각주:1] 점심 뭐 먹을지[각주:2]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닌가? 혼자 점심을 때워야 하는 사람은 하여간 스스로 내린 결정을 스스로에게 집행시켜[각주:3] 혼자 우걱우걱 뭔가를 먹을 테니 문제가 안 되지만,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야 너 밥 안 먹었지 나도 안 먹었어, 그래 오늘 점심 어떡할까"라는 질문이 오고가는 순간 이것은 인류 지구출현 이래 가장 심각하고 만연한 당면 위협이 되어 복수의 인간을 '사회'로 만든다. 농경혁명 이전에는 산열매나 짐승을 채렵해 오는 것이 큰 문제였고, 산업화 또는 상품작물 재배 이전까지는 없는 살림에 어떻게 몇 없는 반찬들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만들어 먹어볼까가 큰 문제였다면, 수많은 점심식사 서비스[각주:4]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오늘날 우리에게 점심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잘 설계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세련된 질문으로 요약된다. "짜장[각주:5] 먹을래, 짬뽕[각주:6] 먹을래?"

짜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용 대비 최대 포만감[각주:7]을 자랑하는 점심밥의 지존이 아닌가? 대국의 소스와 야채와 면발[각주:8]을 선진국의 조리기구[각주:9]를 이용하여 급하고 대차게 볶아 짜고 맛있게 빨아먹는 그 맛은 과연 반도의 민족이 기다려왔던 맛인지도 모른다. 한때 우리는 실로 짜장면이란 것을 한 번 먹어보려고 애쓴 시절이 있었거니와 지금은 정 별미가 생각나지 않을 때[각주:10] 크게 실망스럽지 않은 선에서 선택하는 대단한 메뉴가 되었다. 한편 짬뽕이란 무엇인가? 스트레스 해소[각주:11], 짜장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별미[각주:12], 한번 맛들이면 잊을 수 없는 그 진득한 고추기름의 매운 국물은 또한 우리의 입맛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짜장보다 짬뽕, 더 나아가서는 짜장을 배격하고 오직 짬뽕인 자만이 있을 정도로 또한 쟁쟁한 선택인 것이다. 지난 몇십 년 간 선조와 선배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두 메뉴를 적절히 '돌려 먹는[각주:13]' 것이 당장 점심을 때우는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방편임을 깨닫고 이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오늘도 우리는 직장에서, 동아리방에서, 촬영지에서, 투표소에서 묻고 또 묻는다. "짜장 먹을래? 짬뽕 먹을래?"


그러나 과연 우리는 매일, 매주, 매년 이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으로써 점심밥을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만족하면 그만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첫째로 뭐든지 맛맛으로[각주:14] 먹어야 한다는 근본적 욕망[각주:15]이 문제된다. 매일같이 짜장 아니면 짬뽕을 강요하는 일터는 아무리 "중식 제공"[각주:16]이라는 후한 조건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점점 싫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이나 고민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오히려 점심을 매일 직접 골라먹는다는 인간의 즐거움을 말살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짬뽕 먹었으니까 오늘은 짜장" 따위의 점심을 고르는 태도는 마침내 주문전화번호[각주:17] 또는 다른 종류의 점심밥[각주:18]을 잊게 하고 주방장 위주로 공급되는 점심시간[각주:19]을 만들고 말 것이다. 어느 날 울면이 먹고 싶어 엉엉 울더라도 주방장이 "울면 안 돼" 하면 그만인 점심시간을 원하는가?

둘째로 점심밥의 형태가 본디 다양한 것임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중식 제공이란 말이 중국식 식사 제공의 줄임말은 아니지 않은가? 중식을 제공해 준다는 곳에 가기만 하면 으레 "짜장이냐 짬뽕이냐" 질문을 받던 필자는 과연 중식 제공이란 중화요리를 제공한다는 뜻이거니 이해했었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실로 그렇다. 우리는 각자 도시락을 싸 올 수도 있고[각주:20], 다같이 시켜먹을 수도 있으며[각주:21] 몇 개 그룹을 만들어 알아서들 먹고 오라고 정해줄 수도 있다[각주:22]. 우리가 짜장 아니면 짬뽕으로 통일해 시켜먹게 된 것은 과정상, 통념상 그리 된 것일 뿐 어떠한 형이상학적 필연성도 없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의 누적일 뿐이고 따라서 "야 안되겠다 내일부터는 각자 도시락을 싸오자"라고 하더라도 사실 놀라거나 화를 낼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런 제의에 반기부터 일으킨다. 매번 현금 걷는 문제[각주:23]라든가 메뉴의 다양성 추구라든가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왜 그 이유를 듣는 게 아니라 반대를 하게 되는가?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점심 식사 방법의 생리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짜장이냐 짬뽕이냐'와 같이 협소한 선택만을 하고 살다 보면 소모적이며 비본질적인 오해와 논쟁과 관심사에 쏠리기 십상이다. 간짜장이니 쟁반짜장이니 해물짬뽕이니 삼선짬뽕이니 사실상 다 거기서 거기인 선택을 가지고 '짜장을 희한하게 먹는다[각주:24]'느니 '진정한 짬뽕이 아니라[각주:25]'느니 취향의 문제를 걸고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짬뽕 시켜서 양파는 안 먹고 단무지하고만 먹고 있는 사람한테 "야 니가 다마네기[각주:26] 다 먹었냐"라고 무안을 주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마네기가 뭔지도 모르는데다 다마네기를 실제로 맛보지도 않은 사람이 "다마네기가 뭔지나 알아야 먹을 것 아니냐, 다마네기를 줘 봐라"라고 역정내어 싸움이 붙을 때 어떤 이간질 잘 하는 사람[각주:27]이 "아, 다마네기란 단무지의 일본말이야"라고 거짓된 정보를 뿌리면[각주:28] 싸움은 수습할 수 없는데다가 다음과 같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래 내가 '다마네기'를 좀 먹긴 했어 근데 먹으면 안 되냐?" (사실 그는 다마네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 "안 되지! 난 맛도 못 봤는데 다 없어졌으니까." (사실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다마네기들은 이 싸움에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짜장만 먹고 있는 그의 옆 자리 몇 명[각주:29]이 다 먹었던 것이다.) "그깟 다마네기 좀 먹으면 어떻다고 그러냐? 나도 돈 내고 먹는 거 아니냐?" "나는 뭐 돈 안 냈냐? 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이것이 우리 사회의 꼬락서니다. 지극히 오랜 세월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 점심을 챙겨먹는 세계가 된 이후로 우리는 짜장을 동경했고 짬뽕에 매료되어 이 둘만 있으면 점심시간은 어떻게든 언제까지고 만족스럽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짬짜면을 시켜먹을 것이냐 하면, 마치 실제로 짬짜면의 인기가 형편없듯이, 그것이 근본적 해결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고 다시 각자 수렵을 하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냐? 그것도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여기서, 서로를 알 만큼 알고 합의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누군가의 집에 모여 마냥 점심 문제를 가지고 고민만 하고 있을 때 으레 해 주는 대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냥 있는 거 가지고 대충 만들어 먹자[각주:30].

필자는 감히 도전한다. 왜 이게 안 되는가? 아무리 의심하려 해 보아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굳이 어디에 전화를 해서 우리가 먹을 점심을 남한테 시켜야만 하는 상황[각주:31]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짜장면과 짬뽕은 강력한 추천메뉴였고 신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점심을 때우는 방법 중 하나일 뿐, 절대 완전한 양면적 선택이 아님은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의 냉장고에는 의외로 지금껏 짜장과 짬뽕과 기타 온갖 별미를 동경하며 주워 오고 기르고 사 오고 쌓아 놓은 식재료[각주:32]가 적지 않다. 게다가 우리들 중 누구도 요리를 할 줄 아는[각주:33] 사람이 없으리라고도 나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첫째 점심밥을 먹는 것이요 둘째 즐겁게 다같이 밥을 먹는 것이지, 절대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인습에 가까운 기계적 양자 선택을 반복하며 평균 이하의 집단적 만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다같이 조리하고 상을 차리는 과정은 손이 가고 귀찮고 쉽지 않을뿐더러 시켜먹는 음식과 같은 본새도 나지 않을 것이다.[각주:34]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필자는 다같이 만들어 먹는 점심식사를 가지고 싸움이 일어난 사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많은 합의와 양보와 이해와 협동에 기초하기 때문에 싸움이 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좀 늦어지더라도 모두가 수긍, 만족, 또는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점심밥을 원한다면, 그리고 여태껏 짜장이냐 짬뽕이냐로 어쩔 수 없이 점심을 통일해 왔던 지난 점심시간들을 반복하기 싫다면, 이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편이 아니겠는가?

사회란 제사(社)를 지낸 뒤 젯밥 먹으려고 모이는(會) 동료(societas, 소시에타스)들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사회가 점심을 먹는 방법이 짜장 또는 짬뽕 둘 중 하나만을 시켜먹는 것으로 한정될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우리가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그래서 모두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 모양의 밥을 다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지어 먹을 정도의 재료가 이미 충분히 우리에게 있다면, 좀 늦어진, 좀 더 탄, 좀더 라면스프 맛이 나는 식단이면 뭐 어떻겠는가. 이제 우리가 먹고 싶어하는 것은 그런 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그런 밥을 지어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제 충분히 '놀러온' 것과 같은 경험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각주:35] 이제 중화요리만 연속으로 내리 먹는 시절은 지겹기도 하지 않은가.





  1. "단기적 의미에서" [본문으로]
  2. "어떤 사회적 가치/공동선/이득을 추구할 것인가" [본문으로]
  3. (인민의 자기통치 상태, J.S.밀의 최고 이상적 민주주의) [본문으로]
  4. "사회 이념/체제" [본문으로]
  5. "자유자본주의" [본문으로]
  6. "사회민주주의" [본문으로]
  7. "효율/산출량" [본문으로]
  8. "자본" [본문으로]
  9. "제도체제" [본문으로]
  10.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생각할 수 없을 때" [본문으로]
  11. "민중 분노 표출" [본문으로]
  12.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규범과 시각" [본문으로]
  13. "그때그때 비중을 두어 양자택일하는" [본문으로]
  14. ('이것저것 여러 맛을 골고루'를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본문으로]
  15. "오로지 양극단 체제의 힘겨루기만이 답인가에 대한 직관적 의구" [본문으로]
  16. "형식적/절차적 헌법/국가질서의 보장" [본문으로]
  17. "투표 감각" [본문으로]
  18. "대안적 사회체제" [본문으로]
  19. "파시즘" [본문으로]
  20. "무정부주의 내지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꾀할 수도 있고" [본문으로]
  21. "합의된 사회적 가치/이득을 공동으로 추구할 수도 있으며" [본문으로]
  22. "지방분권제 또는 연방제를 실행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23. "사회적 비용의 분담 문제" [본문으로]
  24. "자유를 저해하는 자유주의를 추구한다" [본문으로]
  25. "원조 사회주의를 배반했다" [본문으로]
  26. "복지" [본문으로]
  27. "악덕 매스미디어" [본문으로]
  28. "핵심 개념과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틀을 제공하면" [본문으로]
  29. "담합한 대기업과 사회 기득권자들" [본문으로]
  30.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전혀 새롭고 처음 겪어 보는 선택을 찾자" [본문으로]
  31. "선진국의 사례나 외래 사상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수준" [본문으로]
  32. "자본" [본문으로]
  33. "저력과 역량이 있는" [본문으로]
  34. "전혀 다른 우리만의 방법을 합의하고 도출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비용이 들고 오래 걸릴 뿐더러 본격적인 짜임새를 갖기도 어려울 것이다" [본문으로]
  35. "그런 사회적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진취적으로 흥미진진한 역사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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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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