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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_일생.txt

2013. 2. 3. 17:20

오늘 송파교회 강진수 목사님 설교에서 기억나는 대로 옮김.

믿는다는 말도 너무 쉽게 합니다. "당신 죄인입니까?" 물어봐도 너무 자연스럽게 "네, 저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저 구원하시려고 죽으신 거 압니다"라고 너무 편이하게 말하고 있단 말입니다. 전도를 할 때는 그 믿는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싶어서 막 추궁을 하지요. 자꾸 "믿습니까?", "당신이 죄인인 것을 믿습니까?" 묻는데 그 사람이 또 착한 사람이어서 싫다고 거절은 못 하겠고 계속해서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데 그냥 믿는다고 하십쇼" 하면 '천국이 있는지 내가 죄인이라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하고서 얼떨결에 "예 예 믿습니다 네" 대답 한번 해 주지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새신자가 왔습니다, 당신 구원 받았습니다" 하면서 좋아하고 환영하고 그러죠. 그러니까 아 이게 좋은가보다 하고 주일날 하루 이틀 오는데 복음은 잘 몰라도 '아 말씀이 좀 좋은 것 같다' 하면서 한 해 두 해 있다 보면 집사도 하고 권사도 하고 장로도 합니다. 교회에선 집사고 장로고 목사인데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모른다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정말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 되느냐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스마트폰 많이 쓰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치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기독교'라는 앱 하나 받아서 쓰는 것 같다 이 말입니다. '문제 있으십니까? 작정기도 좀 해 보십시오, 이 앱 써 보십시오. 사업 잘 안 됩니까? 이거 실행해서 쓰십시오. 다른 거 뭐 '가톨릭'이나 '불교' 앱보다 이게 훨씬 좋습니다!' 그러는 것 같단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OS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퍼레이팅 시스템 아시죠, 체제를 바꾸는 거란 말입니다. 윈도우 쓰던 사람이 맥킨토시 쓰면 처음에 버벅거리고 잘 못 다룹니다. 지금껏 써 왔던 것들을 쓸 수가 없게 되지요. '이 프로그램은 호환이 안 돼서 못 써요, 현실이 이래요', 그렇게 다른 OS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서 포기해야 할 게 많아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체제가 바뀌어 있느냐 말입니다.


체제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저장장치만 뽑아서 아예 하드웨어 기계까지 통째로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관점 같으니 패스. 여하간 오랜만에 블로그에 말씀 본문 포스팅은 오랜만인 거 같다.




(이쯤에서 그렇게 잘 나간다는 싱가폴의 뉴크리에이션 처치 담임목사 조셉 프린스 님의 설교를 들어 보자. 그는 히브리어에 숨겨진 번영의 진짜 의미를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그 비밀을 알려면 싱가폴달러 10불을 내야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뉴크리에이션처치 갔을 때 마침 직접 들었던 아래 같은 설교 따위로 대신해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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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여러분은 이 글을 일요일에 읽고 계실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만약 교회를 다녀온 뒤 이 글을 검색해서 읽고 계신 것이라면, 이제 그만 읽으시고 일어나 다시 그 교회로 돌아가셔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께 물어봐 주세요. 그게 훨씬 낫습니다.)



완전선으로서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왜 선한 존재인 그는 악한 인간을 악한 대로 내버려두는가?

무신론자들이 이 질문 하나 던지고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물거리는 동안 "그러니까 신은 없는 거다"라고 결론지어버린다. 사실은 아주 좋은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진지하게 저렇게 물어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진지하게 대답해 주자. 에티오피아 내시와 같은 유형의 회심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래에 세 가지 유형의 답안을 작성해 봤는데, 듣는 사람에 맞게 선택해서 적절히 성경 말씀을 섞어 가며 말해주자. 이런 질문에 대해 믿는 사람이 흥분해선 안 된다. 오히려 좋은 질문이므로 차근차근히 대답하여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소중하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할 말은 그것이다.

0. 다음 성구를 명심하라.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6:1-2)"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롬9:14-15)"

  1. 성경으로 따져 보면(신앙자용)
    마13:24-30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장 직접적인(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언질이다. 핵심은 죄인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유기(내버려둠)"하심.
    롬1:19-24 왜 하나님께서 유기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요컨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 알면서도 도리어 죄를 택한다는 것이다(아담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내력이다. 창3:6-8). 이 문제에 대해서는 2번 답안의 자유의지 부분을 참고하라.
    롬9:22-23 예언서 전체를 통과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에 대한 사도 바울의 핵심 변론. 로마서 9장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데, 그 선택은 순전히 하나님께 달린 것이며 공정한 것이고 피조물은 할 말이 없다, 그것은 그분의 권능과 긍휼을 보이기 위한 일종의 방법이다' 정도가 된다.
    벧전2:7-8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세상에 악인과 악이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마디로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작정'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불쌍히 여길 자를 택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여 내시겠다는 위대한 목표가 그 핵심이며, '유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하나님 백성으로 (알곡 혹 양이 되어) 구별된다.
    잠16:4 하나님께서 악인을 재앙의 날에 '사용하신다'고 적혀 있다.
    욜2:32 크고 두려운 재앙의 날 곧 모든 죄악의 최후심판을 내다보는 이 예언에서 이런 약속이 주어지는데 특히 '주님께서 부르신'과 '살아 남는 사람'에 주목하라. 하나님의 작정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친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사람들을 하나님은 찾으시며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은 모두 구원받는다는 원리이다.
  2.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무신자, 일반인용)
    "하나님이 완전히 선한데 왜 피조물인 인간은 악한가"라는 질문에는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므로 완전히 선한 것만을 짓는다"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이는 얼핏 보면 옳아 보이지만 옳은 논리가 아니며, 옳아서도 안 된다.
    먼저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죄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의미이지, 하나님의 창조물에까지 죄가 없다는 의미는 갖지 않는다. 피조물이란 기본적으로 창조자의 '의도'가 반영되는 것이지 '속성'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 좋기로 소문난 대장장이라도 폭탄이나 총은 만들 수 있다(이 대장장이는 어떡하면 탄알이 힘차게 튀어나가 '목표물'에 타격을 줄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식사 기도를 하고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창작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선량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주지하고 싶은 사실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을 찾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 다시 말해 그분의 속성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질문자만 하더라도 악을 혐오하며 선을 찾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가능성인 것이다.
    또 하나님에게는 완전히 선한 것만을 지을 의무도 이유도 전혀 없으며, 오히려 선악을 택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것이다. 인간에게 일말의 악도 없다고 가정하자. 여기선 인간이 순전히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만 움직인다고 가정하자. 이때 인간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창조자 혹 소유주일 뿐이다. 그분은 인간을 지휘하기만 할 뿐이고 인간은 그분에게 복종할 뿐이며, 오로지 이러한 관계만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인간일 수 없을 것이며 숱한 자연물 혹 동물과 하등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자연물은 완전히 하나님의 의도대로 설계되어 묵묵히 그 의도에 충실하고 있으므로 선악의 차원을 완전히 떠나 있는데,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의 의도에만 따른다면 이 역시 자연물의 입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기 위해서는 전능한 신이 부여한 자유 의지(free will from God Almighty)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자유 의지의 핵심은 선(하나님)을 택하든 악을 택하든 사람이 마음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신은 전능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선한 존재이며 우리를 온갖 포유동물의 하나가 아닌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자유자'로 두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분은 흔히 말하는 '하늘'이니 세상의 이치이니 하는 수준 이상에 계신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분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물론 그 결과는 선택자의 책임인 것으로) '인간'이 된 것이다. 비록 그 결과는 죄악과 선행이 공존하는 이상한 세상이지만, 그 덕분에 인간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 더욱 잘 알 수 있고(이성),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능동적 존재로 존재할 수 있으며(자유), 나아가 죄 많은 세상 가운데서 그 아들을 보내 죽음에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구원)이다.
    질문자는 세상에 악이 횡행하며 악인이 떵떵거리고 있으므로 신을 비관하여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뒤집어, 전능한 하나님이 모든 악인을 멸절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살아남은 인간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엄청난 죄책감에 짓눌려 공포 속에 살 것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선행을 하긴 하겠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의무 혹은 하나의 생존방식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간이 인간될 수 없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질문자가 원하는 선한 사회인가?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만의 하나 정말로 이런 사회를 원하는 거라면, 진지하게 해 줄 말은 없고 빨리 나가서 데스노트나 구해라).
    정리하자면 이렇다. 하나님은 본질상 완전히 선하다. 그러나 신이 지은 인간은 기계적, 본능적으로 신의 선한 의도를 따라 살지만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자 혹은 단순한 관리자가 아닌 '신'으로서 있을 수 있게 하셔서, 인간이 이성과 자유와 신앙을 통한 구원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3. 복음에 이르기까지를 이야기하자면(회심자용)
    세상은 지금만 악한 게 아니라 아담 때부터 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세계가 악했다. 원시 시대엔 하나님께서 이런 죄악에 대해 직접 추궁하시고 처단하셨다. 실제로 세상이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후회하시고' 이 세상에서 죄악을 완전히 쓸어버린 일도 한 번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 그 때 살아남은 사람은 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와 그 가족뿐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정의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죄악과 불순종을 미워하시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결코 불친절하지 않은 사랑의 하나님인 것이다.
    노아 이후로 하나님께선 사람들이 죄를 벗을 수 있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제시하셨다. 제물이 그것이다. 흠 없는 일 년 된 양, 소, 염소, 산비둘기... 속건제냐 속죄제냐 화목제냐에 따라서 제사법도 다 달랐고 제물도 달랐고 의미도 다 달랐다. 하나님께선 가축이 눈앞에서 사람 대신 죽는 모습을 보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무서움을 알고 선을 행하길 바라셨다. 그렇게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이라면 사람들이 따를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악을 행했다. 제사를 모욕하고 하나님을 거스려 인간의 뜻대로 행하고 온갖 죄악과 불순종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님께선 드디어 때가 되자 이러한 제사에 견줄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제물을 이 세상에 내려 주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들은 알고 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한 상징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완전한 죄사함―단번에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죄악을 용서한다고 믿으면, 그렇게 된다―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인류는 더 이상 직접 온갖 재앙을 맞을 필요도, 온갖 복잡하고 끔찍한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어지고 온전히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도 인간 세상은 악한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악한 것이다. 세상이 평화로워 보일 때나 불화할 때나, 온 역사를 통틀어 세상은 악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영생을 누릴 수 없는 죄인이고 악인이기 때문이다. 이 죄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함으로만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사도행전을 펼쳐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도들이 전도할 때 몇천, 몇백 명이 한꺼번에 믿어 구원받는 엄청난 천국 확장이 일어났다. 질문자 당신도 어서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 당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이 복음을 못 듣고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자!



P.s 시대정신 1편을 보다가 중도하차했다. 왜냐면 하필 그날 묵상한 말씀이 에베소서 5장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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