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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잉앤츠의 원래 이름은 '인조이뜰'이었다. 한국예수전도단 대학사역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대상 예수제자훈련학교를 계기로 만나 알게 된 4명이 시작할 땐 완전히 재미 내지 취미로, 1집에서는 제도권 음악을 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하고 연주를 하더니 2집에서는 돌연 끝을 내버린 것처럼 돼 버렸다.

한국예수전도단 서강대학교지부 소속이었던 사람으로서, 동아리방에 놓여 있던 인조이뜰 음반을 보며 싱잉앤츠 앨범을 때마다 구입하며 언제 한 번 리뷰를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문득 멤버 중 한 분인 장보영님의 짧은글을 읽고, 조금 거칠지만 이 아티스트 전체를 둘러보는 리뷰를 조금 써본다.


싱잉앤츠 - 뜰로 나아오라내가 처음 본 이 음반의 실물은 종이로 만든 케이스에 CD가 담겨 비닐로 밀봉돼 있었다.

싱잉앤츠 0집 내지 EP라 할 수 있는 <뜰로 나아오라>는, 아직까지는 포크와 CCM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며, 청년만이 구가할 수 있는 풋풋함과 아찔한 갑갑함을 무슨 4월 어느 날 아침 11시의 햇빛처럼 막 쏟아낸다(그래서 이 앨범의 아트워크도 이런 사진이다. 아마도 실제로는 그냥 대충 멤버끼리 가위바위보로 술래 뽑아서 붙인 것이었겠지만). 트랙리스트를 실제로 들어보아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아직은 세상을 낙관해도 좋은 시기의 청년 정서 바로 그것이 이 음반 전체를 뚫고 지나간다.

가장 유명한 곡은 <전도사 마누라는 다 예쁘다네>라는 네타송이고 내가 가장 손꼽는 곡인 <그럴 수가 없네>는 가장 덜 유명하지만, 두 곡은 완전히 대척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주 구체적으로는) 교회 사역 봉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오묘한 감성의 외곽지역에서 작으나마 독보적으로 분명하다. 말하자면 이 음반의 선율과 가사와 기분은, 이 음반을 가장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딱 그러한 정도의 신선도와 (미)성숙도를 과시한다. 이를테면 "우리교회 청년들"에게 권하면 그대로 '입덕'하게 될 음반인 것이다.

싱잉앤츠 - 1집 우주의 먼지 그러나 사랑받았네서강와웸 홈커밍데이 때 이민형 선배님께 사인을 받고 싶었는데 가져가는 걸 까먹어서 기약 없이 대기중임.

농사부터 향초까지 별별 종류의 생산 프로젝트가 느슨하게 연합해 있던 '뜰' 브랜드에서 "싱잉앤츠"라는 음악팀이 확실하게 분리된 이후 정규 1집 <우주의 먼지, 그러나 사랑받았네>가 나온다. 이 음반은 말하자면 마냥 푸릇푸릇하기만 했던 그 20대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돌이켜 보니 뭐였던가를 최대한 구체적인 언어와 겸손한 사운드로 정리해 언제든 꺼내 재현할 수 있게 만든 앨범이고, 그래서 대중적으로 (개중 가장) 흥행했다.

<우주의 먼지>라는 곡은 방송 BGM으로도 나가고 방탄소년단의 소개로도 유명해졌으나, 그러지 않았더라도 이 음반은 소문이 날 여지가 충분했다. 곡들의 포텐셜과 독자적 정서가 오묘하고도 확실한 까닭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의 베스트 픽이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동기>라는 곡이라든가[각주:1], <초록이 되자> 같은 곡들은 이미 미친 듯한 창의력과 서정성으로 "이게 싱잉앤츠다"라는 공리를 규정한다. 나머지 후반부 곡들이 얼핏 듣기에 다 '홍대 감성'으로 비슷하다는 혐의는, 바로 그 음악적 포지셔닝의 보석을 받고 풀려난다.

싱잉앤츠 2집 - 파국열차호주에 살면서 싱잉앤츠 블로그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해서 한국 집으로 배송받았다.

3년이라는 공백 끝에 설마 싶던 정규 2집이 나온다. 두 음반 사이에는 별게 없었다. 그저 박근혜 정권과 각 멤버의 결혼, 출산, 각자도생만이 있었다. 이 음반이 노골적으로 파국, 죽음, "I'm a single man"을 운운하는 것은 바로 그 탓이다. 아직 청년다움이라는 스펙트럼의 어딘가에서 있고 싶은 그들을 세상은 영 도와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행보는 끝내 '어차피 우리 다 죽잖아?'라는 조소도 무엇도 아닌 현실에서 멈춘다. 음반 표지 디자인과 <우주의 먼지 개미팝 Remix>가 1집을, 명백한 타이틀곡 <파국열차>의 편곡이 인조이뜰의 감성을 필사적으로 복각하려 하는 것은, 그런 맥락으로 살펴볼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음악 작업이라기보다, 차라리 그들이 지나온 세월 전반에 대한 코멘터리에 더 가깝다. 가사들은 개인사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더 늘었고, 센티멘트는 20대가 결코 공감하지 못할 30대의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심지어 대중성과도 거리를 두어서, 조금 흥얼거려 볼작시면 느닷없이 일렉트로닉 편곡(<답장>)이며 B파트 등으로의 전환(<악기를 받았네>)을 걸어버림으로써 "이렇게 부르고/연주하고 끝을 내겠다"라는 의지를 공고히 한다. 바로 이것이 이 음반의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로서의 끝장, '파국'이다. 단 1개 트랙에서 "이번 정차역은 파국" 운운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귀여운 눈속임이라 함이 정확하다.

2집 발매기념 캘리그래피 대회 우리는 언젠가 캘리하겠지요 응모장면이 맥락에서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이 발상을 하고 응모작을 찔 때부터 반쯤은 벌써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재밌게 불러서 그렇지, 사실 이 파국은 진짜 문자 그대로의 파국을 말하는 거 아닐까? 싱잉앤츠가 잠깐이나마 하필 '단편선과 선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엄연한 디스코그래피적 사건이고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 시점에서 남는 물음은 이것이다. 이 파국, 종언, 종료는 실은 싱잉앤츠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였는데 이번에 결언된 것에 불과한가, 아니면 지금까지 전개했던 것처럼 우연하게 디스코그래피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예컨대 싱잉앤츠 멤버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죽을 때 죽더라도 좀더 놀다 죽자" 같은 긍정적 결기를 갖는다면 3집은 마치 2집 위에 1집을 덮어써놓은 듯한 모양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표현이나 발상을 자기표절 내지 재활용하지만 않는다면 ― 김명재님이 계신 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 그 역시 닳아빠진 '홍대포크' 신에서 이번에도 존재감을 뽐내며 좀더 계속해나갈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자다. 내가 너무 낙관하는 것일까? 싱잉앤츠는 여태껏 "맘에도 없는 여행"을 하며 "원하고 바랬던 … 이런 노랠 불러도 좋단 허락"을 구하다가 기어코 "뜨거웠던 지난 아픈 기억 … 모두 다 바람에 흘려 보"내고 만 것일까? 그걸 나와 숱한 청취자들만 몰랐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이다. 자기들은 일개미지만, 그래도 노래는 하면서 "조용히 재밌게 …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살고 싶다던 싱잉앤츠가 이제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다면, 그런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힘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3집을, 아니면 디지털 싱글의 연속을, 하다못해 기성곡의 편곡 놀이라도 계속해 주기를 무책임하게 바라게 되는 이유다. 뭘 하든 식상하거나 전형적이지는 않았던, 복잡하고 밝았던 청년의 때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싱잉앤츠가, 이젠 정말로 노래할 거리가 다 떨어진 건지, 아니면 그래도 좀더 살아보니 뭐가 더 있더랬었는지, 그걸 한 두어 해쯤 뒤에 좀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1. 이 블로그에서 영역 가사를 붙여 소개한 적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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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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